글-6) 땡전
땡전! 내 장딸!
인생의 중반을 넘기고 보니 새삼 인생이란 무엇인가하며 자주 되돌아보는 버릇이 생겼답니다. 당근 삶은 계란이죠. 위로는 부모님 세대, 동등한 친구와 아내가 있고 아래로 애들이 있어 더없이 행복하고...
이제는 아내보다 애들이 더 재미있고 좋을 때가 많답니다. 특히 딸애를 키우는 재미는 세상 그 어느 것보다 좋습니다. 특히 우리 집 교육의 목표는 ‘자립’이고 ‘스스로 하자’입니다. 내 천성이 게으름인지라 애들 공부 같은 데 신경을 쓰고 싶지 않다는 반증이죠. 초등학교 땐 잘 놀죠. 중학교도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공부야 고2 정도에 하는 거 아냐? 하며 늘 열심히 놀릴 궁리만 했죠. 중학교 3년의 목표야 당연히 고교 진학이죠. 특목고를 못 가 조금 의기소침하더니 고1때도 열심히 천방지축으로 나 다니고는 고2가 된 후로 일단 SKY대를 목표로 하더니 상위 1%는 접고 남은 1등급이라도 받자로 목표를 수정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기적은 있나 봅니다. 장딸이 별로 공부를 못해서 조금이라도 공부에 관심을 보이면 우리는 이것을 기적이라고 표현하거든요. 아마 고1 마치고 호주 여행에서 본 잘 사는, 인간답게 사는 것에 대하여 많이 생각했나 봅니다. 잘하면 유학 보내 주마고 했고 또 스스로 그런 걸 느꼈나 봅니다. 학원 몇 군데 알아보더니 야자 끝나고 심야수업을 신청하더니 1시 반이나 되어야 돌아옵니다. 나도 고3 1년 공부하여 겨우 대학 들어간 주제에 과거야 애들이 확인 할 길이 없으니 큰소리 뻥뻥 치곤했죠. 꼴랑 고2에 새벽 2시면 고3때는 잠 안 잘 거냐며 핀잔도 줘 보지만 돌아 와서도 열심히 책에 머리를 박는다. 요새 유행하는 말로 ‘조거이 공부랍시고 조금 하갓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니 인생은 너의 것’을 되뇌어 본답니다.
휴대폰? 그것 사 주마고 약속했답니다. 전교 1등하면. 아마 휴대폰을 꼭 손에 쥐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애초부터 ‘애들의 버릇은 돈으로’라는 기치로 키워왔기 때문에 아무리 귀찮고 어려워도 절대 돈으로 해결을 보고자 한 적은 없습니다. 해서 중학생이 되면 매월 용돈을 협의하여(협의가 아니라 그냥 내 맘인데 그런 절차를 밝으면서 애들의 반감을 누그러뜨리는 거죠) 책정하여 주고는 결산을 받으면서 새 달치를 주곤 합니다. 아들놈은 ‘보고 안하고 안 받는다’여서 그래, 언제까지 그러나 보자며 기 싸움에 든 지 오래고 그래도 딸년은 아양을 떨며 한 푼이라도 더 받아 내려고 안달이랍니다. 그런데, 그런데 왜 우리도 놀려면 돈이 필요하지 않던가요. 놀러 가라면서 돈 안 줄때 제일 신경질 나던 기억이 새삼 새롭네요. 딸애는 새벽에 나가 오밤중에 돌아오니 겨우 매점에서 빵 한조각 사 먹는 것 외는 돈 들 일이 별로 없나 봅니다. 벌써 용돈 청구일이 일주일이 넘었는데도 딸은 아양 뜰 생각조차 않네요. 내가 답답하여 용돈 있어? 하니 ‘땡전 한 푼 없다’면서도 별로 내게 목을 매 달 생각도 않고 매정하게 등을 보이네요. 아연 가슴이 철렁, 긴장... 요것들이 이젠 사춘기 넘어 이젠 반항기인가 보죠. ‘뭐 땡전? 그래 얼마나 견디니 보자’했지만 아침마다 잠결에 들리는 소리로 보면 제 어미한테 살살 홍홍~ 해 가며 몇 푼씩 받아 가나 보다. 기록을 안 남겨도 되는 비자금 돈 줄이 생긴 게다.
그럼 앞으로 더 큰 돈줄기도 다 잡아야 하는 건가? 아니다 평생 백기를 들고 나오지 않아도 좋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한 가지 더 섭섭한 것은 이제는 내역서 안 받고도 용돈 올려 줄 참이었는데 아버지로서의 대범함을 보여 주기도 전에 딸년은 훌쩍 커 버린 것이다. 고맙다. 내 장딸! 그래서 너희는 별로 내세워 자랑 할 건 없어도 영원한 내 사랑거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