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17) 예은아 보아라
예은아 보아라!
너가 집을 떠난 지 일주일이 되었구나. 연일 혹서다만 거긴 덥지는 않겠지? 공부할 환경은 어떤지 모르겠다. 우리 셋은 사흘에 이틀씩 런닝한다. 땀이 몇 번 옷을 적셔도 기분 좋다. 여름이 덥지 않구나. 상욱이도 며칠 전에 10km를 뛰었다.
어디 큰 뜻을 품고 외국 유학한 것도 아니고 떠밀리다시피 반 재수생의 모습으로 떠난 모습이 안스럽기만 하구나. 죄수생의 심정으로 하늘을 쳐다보지 말고 많이 배워 오기 바란다. 스스로 느끼지 못하면 어떤 형태로든 공부는 안 된다. 너가 절감한다면야 굳이 이렇게 철창에 갇혀 공부해야겠니? 조용한 산사에가서도, 공부방이나 교실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할텐데... 아직도 공부 안 되는 이유를 너 자신이 아닌 다른 탓으로 돌리고 싶은게로구나?
고등학교 내신이 30%가 되는 지 모르겠다. 처음 외고 실패 후 목표는 못해도 2등급(9%)에 1등급(4%)은 들 것이라고 했는데 세상살이가 그리 쉽지는 않은 모양이지? 공부는 너의 미래다. 물론 너가 우리의 미래인것만은 틀림없지만 우린 너가 공부아니어도 딸로 성실하게 살아 주면 고맙게 생각하지. 너도 어른이 되어 지금을 되돌아보며 너의 자녀들과 지금을 이야기 할 날이 있을거야. 인생은 연이어 끝이 없으니까.
우리는 너가 우리집 장딸로 태어나서 얼마나 기쁜지 모른단다. 정말 감사하고 자랑스럽고 널 사랑한다. 특히 나는 여자가 없던 가족여서 너가 더 이쁘고 좋단다. 공부로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언제나 네 편이다.
넌 자주 엄마, 아빠가 공부를 잘해서 스트레스 받는다고했지만 그 대상은 우리가 아니라 너 자신이어야 된다. 우린 공부 그것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공부 아니어도 얼마든지 인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그리고 공부 해 본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과연 공부가 제일인가 하는 의구심도 있는 게 사실이야. 그러나 공부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노라면 별로 썩 잘하는 일도 없긴하다 그지? 그리고 나중에 절실히 하고 싶은 일이 발견되었을 때 또 그 일을 할 수 있는 베이스가 지금의 공부이기도 하다. 일단 공부하기로 작정하고 인문계로 갔으니 대학을 가는 거다. 고 3년의 승패는 대학이다. 공부는 별 것 아닌지 몰라도 대학은 정말 한번쯤 갈만한 곳이거든. 외고 실패하던 때를 잘 생각해 보라. 외고 그 자체도 사실 별 것 아닌데.... 중 3 내내 제대로 공부한 번 해 보지 못한 결과로 마지막 한, 두달 한다고 되던? 그럼 대입을 1년 100일 남긴 지금은 어떤가? 현재의 내신으로는 대학 진학 어렵겠지? 서로 약속한 바도 있고, 나머지 1년을 확실히 하지 않고는 너 생각대로 되기는 어려 울 듯 싶다. 그러나 다른 대안이 없는 바에야 이번에 한 번 더 해 보는 거다. 중학부터 이미 4년 반을 같은 결과로 일관하였으니 스스로를 고쳐 향후 일취월장하길 바라면서 몇 가지 제안한다.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게 아니다. 먼저 몸으로, 엉덩이로 한다. 오래 책상 앞에 앉아 있어야 한다. 다음으로 손으로... 머리가 좋으면 효율은 좀 더 있겠지만 큰 건 아니다. 오래 앉아 열심히 머리를 써서 한다면 금상첨화다. 마지막으로 가슴으로 느껴하는 거다. 그러나 가슴으로 절감하여 공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엄마, 아빠도 그 정도는 못해 봤으니 말이다.
공부는 생각과 생활이 단순해야 한다. 먹고, 자고, 공부하고... 고3은 개처럼 한다고 했지? 인간다움이니 문화니 하는 건 미뤄야 할 것이다. 고약하게도 이 공부는 이 세상 무엇과도 같이 되는 게 아니거든. 공부에 도움되는 남자친구는 없다. 지난 날 옷이며 매무새, 머리며 신발, 가방이며 얼마나 많이 싸웠니? 교회며 남친이며, 모임이며...그게 지나고 보니 얼마나 공부에 도움이 되었는가 잘 생각해 보기 바란다. 옷이나 모양으로 내 보일 게 아니라 속에 갖춰진 실력을 자랑하거라. 스스로 실력이 갖춰지면 남의 눈이 그리 의식되지 않거든.
그리고 시간 계획은 새벽공부가 안되면 흔히들 말하는 일류 대학은 포기해라. 참 잘 안되겠지만 12시 이전에 자고 새벽 4시경에 일어나서 하루 공부가 시작되어야 한다. 거기서도 누가 그렇게 하는 지 유심히 보거라. 아빠도 평생에 단 세 번 공부한 기억이 난다. 촌에서 중학 마치고 입시에 떨어지고 재수할 때, 그리고 고3 때 1년, 대학 3-4학년이 고작이다.
그때마다 새벽 4시에 안 일어 나 본 적이 없다. 거기서도 새벽에 맨 처음 일어나 책 잡지 않고는 힘들다. 일과 없는 날은 새벽 4-8, 오전 9-12, 오후 13-18, 밤 19-23 하여 하루 총 15시간 공부가 가능하거든. 공부란 괴로운 것이지만 새벽공부의 상쾌함과 뿌듯함이란 누가 알겠니? No mark Chance!
2학기 선행학습이니 거기서의 평가 내용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구성원들이 공부를 잘 해 더 배우러 왔다면 몰라도 아마 너처럼 평소에 잘 안되니까 다른 방법을 찾아 온 부류가 많으리라는 생각이 들어 별로 내키지는 않았다. 다만 마치고 와서 2학기 중간고사부터 월등히 나아져야겠다는 것이다. 충분한 예습이 이루어졌을테고 보충 수업하는 친구보다야 몇 배는 더 미리 투자하는 거니까 당연히 그래야 할 것이나 너가 스스로 매진해 주지 않는다면 헛일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공부에 관한한 너도 매번 실망만 안겨 줘서 미안할 것이고 우리도 좀 더 널 칭찬하며 키워야 하는 데.... 하지만 그게 쉽진 않았구나. 넌 어떻게 생각하는 지 모르지만 기숙학원 간다고 친구 만나는 일, 사전 무겁다고 안 가져가는 일, 케이스 책은? 등등 너무 공부와는 동떨어진 생각으로 떠난 너가 얼마나 할지.... 늘 노심초사다. 하지만 결과는 It's up to YOU!
정말 어느 누구에게도 너가 학원 갔다는 소리를 못하겠구나. 사실 우린 좀 부끄럽거든. 난 학원 아니어도 너가 스스로 잘 해 주었으면 했는데 이게 무슨 별스런 경우니? 안 그래? 크게 기대 할 일은 아니다만 미리 실망할 필요는 없다. 이런 별난 경험도 다 하였으니 공부에 대한 너의 태도가 바뀌어 주었으면 한단다. 열심히 해 주기를 바랄 뿐이고 너의 미래를 위해 남은 1년여 전심전력으로 매진해 주길 바라노라.
널 사랑한단다!
2002. 7.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