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23) 영어로 살아가다보니.....
영어 번역 에피소드
평생 영어를 하다보니 이런저런 남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일들도 많다.
애들이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부모의 권위가 먹혀들지 않음은 자명하나 아직은 감히 넘지 못하는 벽이 있으니 그것이 영어다.
아들놈이 중학교서 영어를 배우더니 심심하면 영어 끝말잇기 놀이를 제안한다. 누나, 엄마가 단어를 이어갈 때는 의심의 눈초리로 보다가도 내가 단어를 대면 일단 수긍한다. 지놈 수준으로는 아직 가늠을 못하기도 하거니와 누나나 엄마만 잡으면 2등은 하니 내겐 시비가 없다.
어쩌다 한 번 씩 쓰윽~ 지 엄마를 어깨로 밀며 “엄마 이거 아나?” 하며 새로 배운 단어를 던지면 엄마는 “야 이놈아, 그래도 니 엄마는 석사다. 아직 너까짓 건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며 발뺌하기에 급급하면 “아빠, 엄마 정말 맞아요?” 하며 내게 묻는다. 자슥~ 아직 영어로는 한 참 멀었다.
딸년이 취업을 하여 연구 보고서며 논문을 봐야 하는 갑다. 사무실에서 급히 영문 보고서를 번역해야 할 일이 생겼나 보다. 분량이 많았는지 어찌어찌하여 나에게 번역 의뢰가 들어 왔다. 당근 잘 드는 칼에 며칠 5-60페이지 정도하니 아내는 미리 떡고물부터 챙길 심사다. 번역하는 동안 밥도 해주고 뒷바라지했으니 자기 몫도 챙겨달라는 투다. 딱히 얼마로 계약한 것도 아니고, 또 이런 건 연말에 정산하면서 번역료를 지급하는 게 상례라 딸년만 믿고 완료하여 미리 보냈다. ‘글쎄...얼마 주면 되겠어?’ 하니 ‘그야 물론 다다익선이죠’한다.
바보! 멍충이, 누가 몰라서 묻나? 주기 싫으니까 묻지.ㅎㅎㅎ
하여 재미삼아 제안을 해 본다. 안 줘도 그만이니 내가 손해 볼 일은 없고....
1) 내가 번역료를 얼마를 받든 현금 30만원 주겠다.
2) 받은 금액의 30%를 주겠다.
3) 받은 금액 중 100만원 빼고 다 주겠다.
3가지 안을 제시하니 한참 곰곰 생각하더니 그래도 현금이 좋다며 30만원을 원한다.
아마 아내 생각엔 기껏 받아 봐야 장당 1-2만원일테니 1)안이 최고라고 여긴 모양이다.
나야 뭐 못 받아도 그만이지만 미리 손해를 감수하고 30만원을 건네 주니 아주 좋단다.
돈 안 좋아하는 아줌씨 있음 나와보시옵소서....
연말이 되니 통장에 턱하니 230만원이 입금되어 있는 게 아닌가?
딸년 삼실 팀장이 번역이 잘 되었다고 나를 최상급 번역가로 인정해 주신 모양이다.
아내는 우선 현금에 눈이 멀어 몇 십만원은 고스란히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아이구 쌤통이다. 현금에 눈 먼 아줌씨 좀 보소!
하하하 재미있는 영어 에피소드 한 자락!
인생은 이리도 아름다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