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6) 친구따라 강남(싱가포르) 가기 -2002.11-
강남? 한강 건너 강남가기가 어렵다는 건가? 옛날부터 교통체증을 예견했다는 말인가? 아니 제비가 추위 피해 중국 양자강 아래서 겨울을 나고 새 봄이면 우리나라로 찾아 온다지? 그럼 친구 찾아 강남 간다는 말은?
우리는 언제 어떻게 여행을 하게 되는 가? 구랍 유럽여행에 재미를 붙인 탓인지 올 초엔 사람을 찾아 켄버라로 열흘간 정말 여행다운 여행을 한 탓인지 어른 되고서 무슨 큰 영화를 볼 것도 아니면서 자주 여행을 나다니게 된다.
나는 흔히들 지나치듯 하는 인사말도 쉽게 믿어 버린다. ‘다음에 술 한잔 하자’는 친구 녀석의 말이라도 들을라치면 ‘언제 만나지?’하고 연락 없는 지금까지도 기다린다. 하도 이런 일이 많다보니(나만 물을 먹다보니, 말한 놈은 까맣게 잊고 있을지도 모르는 데) 이제 누구라도 헤어질 때 ‘담에 술한잔하지’하면 ‘언제?’하고 반문을 한다. 그러면 그녀석들 좀 머슥해한다. ‘아니 지금 약속해놓고 정 안되면 다시 연락하면 되자너’하며 집요하다. 내가 술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사나이의 약속이니 지키고 싶은 거다. 지금쯤이야 ‘야, 맘에도 없는 헛소리하지마’하는 여유도 생겼지만 그것도 별로 친구에게 하는 대꾸로는 적절치 않다. 하는 수 없이 나도 ‘그래, 다음에 그러자’하며 헛 약속이나 남발하며 익숙할 때도 되었건만 그러자니 영 찜찜하다. 그런 사업상 하는 인사는 체질에 안 맞다.
싱가포르 여행은 이런 나의 태도에서 비롯되었다. 동균이 녀석이 자주 날 불러 술 한잔 하자고 꼬신다. 나는 술이나 노래방으로 대변되는 김동균식 놀이 문화에 찬동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빠짐없이 불러 모으는 정성이 괘씸하여 거의 만사 제쳐놓고 진해까지 달려가는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는 편이다. 9월 어느 저녁시간 한참 런닝한 후 땀 범벅인 채로 느닷없이 불려나갔다. 운동복차림으로... 당연히 한잔 걸치고 한노래 하고는 ‘몇 개월 바다에 나간다. 싱가포르 올래?’ ‘응, 그래 갈께’ 자슥 술김에 가벼운 농담으로 그러진 않았겠지? 그러고는 10월말에 괌을 출발하면서 전화가 왔다. 싱가포르에 11월 6일쯤 도착할 것 같다고... 그럼 7일 도착하면 되겠네로 끝내고 지놈은 괌에서 싱가포르로 나는 부산서 싱가포르로의 동시다발여행이 시작되었다. 좌표상 시,공간까지 맞춰 한 지점에서 만날 수는 있으려나하는 의구심을 가진 채... 마침 항공여행 비수기에 발리 테러로 거의 반값에 항공권이 나와있었다. 3박4일 일정으로 학교수업, 회사업무 정리하는 일도 만만챦다. 바쁜 일 정리하다보면 죽을 날도 없다지 않는가? 정말 이국땅에서 나같이 재미없는 놈을 친구랍시고 불러 주기 쉬운가? 또 부른다고 시간, 돈 무리하며 가는 게 쉬운가? 아무려나 나야 오래니 가는 거다. 업무 수행 중 친구랍시고 불러들이기도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정성이 괘씸하여 방학이면 몰라도 학기 중에 시간을 내기가 쉽지는 않다. 더구나 11월말에 서울서 국제학회가 일주일간 예정되어있어 이래저래 몸 빼내기가 수월챦다. 그래..가는거다. 부르기도 어렵고 가 주기도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아니하거나 딱히 못 할 일도 아니지 않는 가? 다 마음의 문제인고로...
군인인지라 연락도 되지 않는다. 혹시 못 만나면 어쩌나하는 회환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나는 11월 7일 저녁 창이 공항에 내렸다. 나는 비행기도 2시간만 되면 거의 죽는 시늉을 한다. 정말 대책이 없다. 남들은 잠도 잘 자건만...성질이 못되어 나만 손해인 것 같다. 당근 안 보이지. 일순간 허탈... 군에서 하던 버릇대로 지 맘이다. 대장이 늦으면 당연히 졸이야 기다리는 것 아닌가? 다행히 많이 늦진 않아 반가이 건강한 웃음으로 맞으니 기분 좋다. 이국땅에서 시공간 좌표 맞춰 딱 들어맞는 다는 건 얼마나 신기한 일안가? 무수한 이방인 속에 아는 얼굴이 있다니... 다행히 업무용 차량과 기사까지 있어 더더욱 좋다. 그것도 벤츠 승합차로... 나는 호텔보다는 지인의 가정 초대면 더 좋으련만 가기 전에 연락해 둔 싱가포르대 교수와는 아직 연락이 닿지 않은 상태여서 우선 저녁을 먹으러 간다.
나는 책 중에도 베스트셀러는 읽지 않는다. 어딜 가도 그런 책은 누군가가 사 두었을테니 구태여 내 돈 들여 사지 않아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 취향 때문인지 여행을 하더라도 알려진 곳보다야 숨겨진 알짜배기를 현지인의 추천으로 돌아보는 편이다. 싱가포르 사람들에겐 우리나라 눈구경이 최고라지 않은가? 유명관광지는 그 나름의 명성을 가지고 있는 고로 그냥 스치듯 보아도 다음 사진이나 달리 소개받을 기회가 많으니 말이다.
싱가포르하면 주롱 새공원, 센토사섬 한나절 돌아보면 끝이라고들 한다. 오차드거리의 현대적 화려함과 래플즈호텔 2층 킹스바의 싱가포르 슬링 한잔 빠지면 안되지. 칵테일의 전부다. 그러나 적도 아래 상하의 나라 싱가포르 만의 숨겨진 곳도 많다. 버킷타마 자연공원이나. 숨베이 습지 공원. 그리고 우리에겐 생소한 말레이 거리 리틀 인디아, 차이나 타운, 회교사원 빼지 말아야 할 곳이다. 우정을 논할려면 싱가포르 강변 보트퀴나 클락퀴에 앉아 타이거 맥주 한잔 아니 할 수 없고, 뉴턴서커스에서 앉아 황가오리 바비큐 한점 놓칠 수 없다. 생각보담 카레요리는 잘 보이지 않았고. 시내구간은 한나절 도보여행으로 족하다. 애들이라면 싱가포르디스커버리에서 하루를 보내도 좋겠고 조그만 도자기 공장인 밍빌리지도 관광지랍시고 선전해대는 그들의 배짱이 부럽다. 사실이야 느끼는 사람 몫이어도 일단 선전은 해 두고 볼 일이다. 이 쾌적한 환경에서 런닝 또한 즐기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습한 공기로 인해 숨이 빠리 차 온다. 항상 고온으로 종일 멍청한 상태로 살아야 하는 것도 불만이고..
상하의 나라나 풍경이 생경한 것 보다야 사람 만나는 것이 더더욱 좋다.
새 친구를 만난 것이 이번 여행의 제일 큰 소득이라 자위해 본다.
사스(SARS)로 뱅기값이 싸서....(390,000 x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