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4) 신불산 구름 속의 산책
이번 산행의 컨셉을 마음으로 보는 초록 켄버스에 그리는 구름 속의 산책으로 정했습니다.
사부, 박여사, 이귀옥, 김정숙, 길영근 그리고 나.
미당 시, 송창식 노래 '푸르른 날'을 음미해 보십시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하자
눈이 나리면 어이 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 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하자!
내 영시 실력도 함 보실래요?
BLUE DAYS -Mi Dang-
On dazzling blue days, let us long for the loved one.
What if it snows? What if the spring returns?
If I die and you live! If you die and I live!
On dazzling blue days, let us long for the loved one.
토요일 저녁 하늘 한 번 보고 땅 한 번 보고... 믿는 만큼 이루어지나니... 믿고 속아도 좋다는 심정으로 기상청을 이뻐하기로 했죠. 전날 늦게까지 미친 짓(술) 한 조각 한 마련해선 제법 일찍 일어났네요. 상시 내 기상 시간은 8시 40분이거든요. 5분이면 세수하고 우유에 더운 밥 한 공기 말아 후루루 마시듯 쏟아 붙는 게 제 한국식 시리얼 아침 식사랍니다.
지난달 김밥 인기가 좋아 이번에도 내가 김밥을 준비하기로 했거든요. 근데... 삼공일이네요.
아내가 ‘충무 김밥 만들어 줘요?’했지만 좀 미안한 마음에 ‘아냐, 그냥 사 갈께’하고 나온 게 얼마나 후회가 되든지... 여자 의견대로 하면 모든 게 편안하고 좋다는 것 안지 오랩니다. 시장 안 다른 곳서 5인분 샀죠. 과일담당 김정숙, 간식담당 이귀옥으로 정해진 때문이죠. 사부는 안내 총책. 08:00 덕천동, 사부와 그의 짝찌 박여사가 가시겠다네요. 사부니까 봐 주자. 창원으로 향했죠.
09:00 시청 잔디밭서 정숙씨 김밥 한 줄 해 치우고 귀옥씨 와서 5명 시시한 포장도로 뒤로하고 삼랑진 오일장 지나 만어사 위로 길도 아닌 길을 거쳐 타조 농장도 지나고 고기가 돌로 변한 너륵지대에 내려 소녀마냥 깡깡거리는 돌도 쳐 보았지요. 사부랑 미리 오늘은 ‘안 가 본 길만 간다’로 정했거든요. 교행? 물론 잘 안되죠. 돌고 돌아가는 길을 돌아 대추가 지천인 밀양 단장면 감물로 나와 표충사 길로 가다 새로 생긴 밀양댐 가는 길로 상쾌하게 접어들었죠. 운문댐이 더 크긴 하지만 부산서 가장 가까이 볼 수 있는 댐입니다. 깊은 계곡 속의 바다 같았네요. 상류쪽엔 래프팅 팀도 보았구요. 그 길이 끝나면 배내골 사거리입니다. 원동, 양산, 밀양, 석남사로 가는 길이 겹쳐지죠. 배내골로 가다 선리 양조장서 동동주 호리병도 하나 샀죠. 아직 초보등산가인고로 먹는 데 신경을 많이 쓰죠.
애당초 계획은 주암계곡을 따라 천황봉을 오르려했지요. 오르는 데만 3시간 정도로 나는 출발 전부터 죽는 시늉 연습부터 했으나 왕초보 두 아줌씨의 홍홍거리는 애교와 시간 때문에 신불산 휴양림 너머로 길을 바꿨죠.
배내 파래소 폭포 위 전망대 가는 길로 접어들어 휴양림에서 8,000원 주차비, 입장료 내고 이제부터 차가 등산하는 거죠. 전인미답의 길로 표현하겠습니다. 연약한 연두색이 색깔을 바꾸지 않으려고 버티다 어쩔 수 없이 초록에 못 이겨 하는 계곡을 서넛 휘돌아 눈 아래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산, 산 넘어 또 산, 산 그 아래로 뻗은 눈이 시린 계곡, 계곡의 진초록을 눈이 아프도록 넣었지요. 오메! 초록이 지쳐 단풍들것네. 연대는 60년대로 한 40년만에 소나무 송구도 해 먹어 보았구요. 초근목피 시절 송기떡 이야기에 풀피리의 기억도 새로웠고. 송화 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시 한 수가 빠질 순 없죠. 나는 산 아래 호연지기로 쉬를 갈기고 싶더만. 보아라! 자랑스런... 이건 치희다.
12시 반 넘어서야 7부 능선 막다른 임도 끝에 차를 세우고 갈나무 숲 사이로 산행이 시작 되었죠. 양기의 대명사 산뽕나무 숲속의 뽕II, 산딸기 온 몸으로 울었다. 복분자? 얼마나 세면 요강이 엎어질까? 난 왜 이런 상쾌한 곳에서도 좀은 퇴폐적이고 불경스런 생각이 들까? 참, 큰일이야. 숲 속에 수줍은 듯이 자리 잡은 옹달샘은 또 얼마나 이쁜데... 여기서 황진이나 선덕여왕 이야기가 왜 나오냐? 산죽 숲을 지나니 갑자기 하늘이 눈 앞이다. 사자평 만큼이나 넓은 100만평이나 된다는 신불 억새 평원이 발 아래다. 다음 가을에 억새 숲으로 다시 오자구요. 신불 정상을 향하는 데 구름이, 구름이 몰려오더니 이내 우리의 사이를 파고든다. 그래. 이거다. 마치 지척이 분간되지 않은 구름 아니 농무? 구름 속의 산책... 알싸한 맥주 거품같은 물안개가 얼굴을 촉촉히 적신다. 간간이 보이던 산철축의 늦은 봄 색깔도 좋더라. 50여분 걸어 1209m 정상이다. 영남 알프스 10여 고봉 중 가지산(1240m) 다음으로 두 번째 1200 이상의 고지다.
1시 반에야 1200고지에서 해발 500m 수준의 먹자판이다. 김밥은 1인분 모자라고(왜지?) 과일에 간식에 맥주, 동동주, 커피까지 알뜰히 챙겨 오셨네. 정숙씨 전공으로 이번에는 소쿠리 대신 플라스틱 쟁반까지 알뜰히 챙겨 왔네. 세 아줌씨 머리카락 끝에 구름이 스쳐가며 흔적을 남겨 영롱한 이슬이 방울 져 반짝이니 눈동자가 온통 머리 결에 붙었다. 산상수훈이 빠질 수야 있나. 말 시리즈, 단칸방 시리즈에서 시작하여 우리는 호놀룰루까지 시공을 넘나들며 진지한 십계보다 더 값진 강의가 끝이 없었다. 흐드러진 철쭉 마냥 웃어 제끼니 온 몸의 근육이 풀려 한 10년은 젊어졌네. 엔돌핀? 한 바가지는 더 나왔겠네.
정숙씨가 저녁을 사부와 박여사에게 내겠다하여 우리는 꼽사리로 즐겁지. 음식 중에 제일 맛있는 것이 얻어 먹을 때 아닌가? ‘여기는 정상’에서 인덕리 인골농장에 오리 구이를 주문하고 하산 길에. 사부와의 산행드라이브는 하산길이 없다. 내려오다 전망대까지 30분 능선 등정으로 360도 대형 스펙터클로 펼쳐진 영남 알프스의 위용을 느낀다. 수리봉, 억산, 운문산, 가지산, 문복산, 고헌산, 능동산, 천황산, 재약산, 코끼리봉, 간월산, 신불산, 영취산, 시살등, 염수봉, 어곡산, 토곡산까지... 산은 산에 연이어 끝이 없다. 산은 결국 물을 넘지 못하고 헉헉거리고... 둘은 천주교 신자, 셋은 예비신자인지라 죽림굴이라는 천주교 공소자리도 들러 보고... 내가 산 속에 있는 지, 산이 내 안에 있는지... 한치 앞이 보이지 않더니 이내 한 구비 돌아 진초록의 산허리를 가르고 또 고사목을 지나니 또 구름 속으로 들어간다.
스포티지는 힘들어해도 뒷자리에 앉은 우린 즐겁더만. 이리 구불, 저리 밀리고... 승차감? 왕켑이지. 흔들리면 더 좋지. 사부는 길이 험할수록 속도를 더 낸다. 박여사만 불안하지 우리야 즐겁기 짝이 없다. 운도 옵빠 뽕짝 메들리에 기생박수, 천당에서 지옥으로 큰 박수에 소음이 그리운 산 속의 정적을 깨며 끝도 없는 임도를 달리고 또 달린다. 제법 논단이 아줌마같더이다. 내려가는지 올라가는지, 끝인지 시작인지 구별이 없다.
배내고개 사슴목장입구로 나와 석남사 위 대형 화판같이 넓은 초록 벽면 위에 가을 색을 그린다. 11월초에 다시 한 번 와서 확인 사살하자구요. 석남 터널 지나니 영근이 전화가 왔다. 영남 알프스 70mm 대형 스크린을 왼쪽에 두고 우리는 주인공으로 경쾌하게 아래로, 아래로 내 닫는다. 인덕리 입구에서 영근이 자주색 밴을 만나 오리구이판 앞에 옹기종기 모여 오리야 길이야... 헛개나무잎에 오리죽으로 저녁을 마쳤다. 정숙씨 뽀르르 지갑을 열더라구요. 아! 그래서 난 행복한 놈입니다. 무슨 착각씩이나? 바로 위 식수 댐이 있어 둑길로 석양 어스름에 갈 숲 사이로 산책... 풀꽃반지도 끼워 주고 입 맞춰 노래도 한자리. 메기의 추억이 어울리는 순간이더만. 내려오면서 피를 쏟아 붇듯 우는 두견새의 소쩍 소쩍 소리도 들었지요.
석양이 꼴깍 져 버린 7시 40분께 아쉽게도 부산팀, 창원팀 갈라져 밀양서 찢어지고... 우리 부산팀은 큰 길로야 그냥 올 수 없지. 또 다시 삼랑진에서 좁은 낙동 철교 건너 생림, 대동으로 구포서 내려 택시로 동래로 넘어 오니 10시가 넘었다라구요.
14시간의 마음으로 걷는 구름속의 산행 모임. 정숙씨 마른기침으로 몸이 좀 곤해하여 내 어깨를 빌려주었더니 21세기판 별들의 고향 한 장면. ‘난 그런 건 몰라요. 아무 것도 몰라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