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 후기

후기-8) 불놀이야! 火旺山 억새 태우기

Dr조은샘 2021. 12. 17. 13:24

火旺山 억새 태우기 산행 후기(2003. 2. 15. . 13:00-22:00)

 

自然大地 위에 永遠의 꽃을 피우고도 沈黙하건만,

人間虛空에 잠시의 꽃을 피우고도 크게 기뻐한다.

 

지난 여름 한,중 수교 1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해운대 백사장과 앞바다에서 휘황찬란한 수천발의 불꽃과 폭죽놀이가 2시간여 있었다. 이때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10년 만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하는 보기 드문 행사로 그야말로 눈의 호사를 하게 된지라 이후에는 어지간히 현란하지 않고서야 눈으로 감동 받기는 틀린 즈음에 이르렀다. 어른이 되면서 오감이 점점 무디어져 감을 느끼며, 제대로 먹고 싶은 게 없어지고 이제는 감동 그 자체가 남의 일처럼 느껴지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새천년(2000)에 못 가 본 죄로 올해 생전(이니 생후) 처음으로 큰 불의 산이라는 화왕산 억새 태우기 행사에 길을 나섰다. 아니 다시 한번 눈의 호사길에 나섰다고 해야 할까. 정월 대보름달 뜨는 시간에 맞춰 630분에 시작된다니 시간이 이미 정해진 상태여서 서둘지 않을 수 없었다. 흔히들 시간이 없어서 뭘 못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러나 이건 순전히 하고 싶지 않았다는 변명에 불과함을 일찍이 깨달은 바 있어 여러 가지 바쁜 일과 중에 토요일 한 나절을 이용해서 강행하기로 했다. 미리 지인들에게는 공지가 된지라 누구든 원하면 동행하리라 하였으나 종무소식이어 집식구와 달랑 둘의 산행길이 되었다. 갔다 오고 나면 왜 자기는 안 데려갔냐는 등 뒷 말이 많기야 하지만 이미 그것은 성의없는 접대용 멘트(소리)에 불과한 것이고...

 

둘 다 토요일 근무로 정확히 1시에 부산을 출발했다. 기본 오차는 5분여로 끝이다. 점심? 물론 김밥 사서 가면서 차에서 먹기로. 등산복 준비? 등산화만 따로 챙기고 옷이야 만덕터널을 지날 때 상,하의 등산복으로 변신이 끝난다. 다행히 고속도로는 뻥 뚤려 영산 IC까지는 1시간여 만에 주파한다. 복잡한 창녕읍내를 버리고 관룡사 쪽으로 3-4시간 걷자는 심사로 옥천방향으로 접어드는데 이미 경찰은 오든 차량을 우회시키고 있다. 좁은 농로를 찾아드니 이내 마을 초입에 들어선다. 240분에 산행이 시작되었다. 수년간 등산으로 건강을 다져왔고 또 2년간 런닝을 한 자신감으로 쉬운 계곡 쪽을 버리고 관룡산 정상으로 길을 잡았다. 당일 등산객의 95% 이상이 계곡 쪽으로 향했으나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처럼 가지 않은 길을 선택했다. 내심 이게 무슨 사서 고생론이 고개를 들기도 하였으나 일단 출발이다. 조금도 지체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으로 스스로를 쳐 넣고 볼 일이다. 소슬한 산죽 사잇길로 관룡사 앞을 지나 너들 지대에 들어서니 이미 후두둑 땀이 이마에서 흐른다. 런닝이야 단시간에 파박 달리고 말면 그만이지만....등산이야 어디 그런가? 이제쯤은 좀 덜 힘들 때도 되었다 싶건만 언제나 그마만한 고통은 수반되기 마련인가 싶어 피할 수없다면 즐기기로....

 

중간쯤 오르니 아니! 4살 정도의 계집아이를 데리고 나선 젊은 부부가 쉬고 있다. 조그만 게 하 기특하여 특유의 작전을 감행한다. 애 엄마더러 빵이 열리는 나무를 일러 주고는 스무 걸음쯤 앞서 나가며 빵을 하나 나무에 걸어 놓는다. 애가 힘들어 더 이상 못가겠노라 힘들어 하는 차, ‘! !’하면서 또 몇 걸음 힘든 줄을 모른다. 우리도 애 키울 때 저만큼은 힘들었을지니... 중로에 약수터가 있어 숨 한 번 돌리고 2시간 만에 마저 정상에 오르니 아! 불자가 아니라도 사바 세계가 발 아래라. 저어기 고사목 사이로 관룡사 반야용선상이 잡힐 듯 가까이 보이고 바위산 사이사이 철주에 로프가 쳐져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참 아무 쓸모없는 무지랭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침에 교통정리를 제대로 했나 이런 곳에 등산용 계단을 설치해 봤나.... 모두 남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게 더없이 미안. 그러니 세금이나 착실히 낼 밖에.

 

봄 산행의 기분 나쁜 일은 모든 게 져버린 뒤라는 것과 아직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은 것 외에도 잔설이 녹아 질척거리는 길과 미끄러움에 있다. 관룡산 정상에서 화왕산성까지는 약 7키로의 진달래 능선 길이다. 작년 비슬산 진달래 산행 실패가 장소 뿐 만 아니라 시간의 중요성도 새삼 깨닫게 한다. 같은 장소라도 언제 누구와 왔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짐은 어쩔 수 없나보다. 봄 진달래, 가을 억새와 더불어 억새 태우기가 있어 화왕산은 일년에 세 번 올 일이 있다지만 나는 오늘 평생 처음 발길을 향한다. 계곡 쪽에서 편하게 올라온 무리와 합치니 산길이 그야말로 데모대열 같다. 출발한지 3시간여 만에 드디어 화왕산성에 이른다. 6만여 평이 더 됨직한 사면이 봉우리로 둘러 쌓인 요새 같다. 그 언저리를 빙 돌아 방화선처럼 미리 억새를 태운 흔적도 있고 맞은 편 창녕 자하곡 쪽은 그야말로 점점이 인산인해다. 어떤 아줌마는 아이고, 불태운다고 미리 돌로 쌓아 놓았네한다. 산성이 졸지에 불막이 방화선으로?

 

전체가 조망될만한 곳에 자리를 잡으니 이내 행사 전 상원제에 이어 대형 달집 태우기에 맞추어 분지 전체에서 억새에 불을 붙인다. 학교시절 김동인의 광염 소나타를 읽었다. 방화나 자극적인 범죄를 할 때마다 천재성이 번뜩이던 백성수의 심정을 알 것만 같다. 부도덕에서조차 예술을 찾고자했던 작가를..그리고 광화사라는 작품을 생각하는 순간 온 들불은 이내 내 눈 앞에 3603차원 I-max보다 더 큰 대형 화면을 가득 채운다. ! ! ! 화염! 화염! 화염!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 연기에 불바다에 후드득 나는 장끼에 불티에....불장난, 바람이 무섭다더니... 산등성이에 선 사람들이 불을 뒤로한 채 점점이 실루엣으로 스친다. 나이아가라보다는 더 웅장한 것 같다. 이과수 폭포가 이만할까? 등산 자체로만해도 좋았는데 이런 눈의 사치를 다시 하게 되다니... 어른 들고 잊어 버렸던 대자연에 의한 감동으로 전율하면서 천천히 잦아드는 뒷불을 보며 발길을 뗀다. 타오르는 불길이야 20분이면 족하다. 그러나 그 짧은 순간 내에 모든 것을 다 불살라버리는 산불의 정열이 대단하다.

 

이럴 때 못 가 본 이들을 위한 한마디! 백문이불여일견! 일단 한 번 와 보시라나깐요!

 

몇 만 명이 동시에 좁은 성문 빠져나오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야간 산행 만 3시간여 걸린다기 지레 겁을 먹고 하산을 서두른다.

 

다음 행사 때 꼭 같이들 가시자구요. 언제 다시 할지는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