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 후기

후기-11) 무박2일 지리산-남부능선 종주기-16시간 죽음의 문턱에서

Dr조은샘 2021. 12. 17. 13:25

*****無泊 2日 智異山 縱走에 부쳐... 16時間 죽음의 문턱에 서서!*****

, 내외에서 저를 기억하고 계시는 모든 분과 제가 감히 제 글의 팬이라고 착각하게 하는 경향각지의 강호재현 여러분! 우선 사죄의 말씀을 올리면서 글을 쓰고자 합니다. 4/19 민주지산 7시간의 산행에서 반쯤 죽었노라, 다시는 이런 미친 짓을 아니하겠다며 호들갑을 떨었던 기억을 상기하면 깊이 뉘우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산모가 산고의 고통을 망각이란 이름으로 잊지 못한다며 이 세상에 둘째, 셋째는 존재하지 않으리라 감히 단언해 봅니다. 달포전 민주지산-삼도봉 산행이 마치 레테의 강 저편에 있었나 봅니다. 무박 2! 이게 정동진 해맞이나 눈꽃열차 정도만 되어도 퍽이나 낭만적이고 사랑하는 사람이랑 같이한다면 아주 폼 나겠지? 자랑 아니하고는 베기지 못 할 만큼이나... 그러나 무박 2일의 일정이 턱하니 내 앞에 떨어졌으니 시작은 작은 물결로 그러나 그 끝은 폭풍으로 채워지게 되었네요. 나의 잠 버릇이 하도 까탈스러워 1박은 언감생심, 절대 사양하는 체질임을 아는지라 내 등산 사부가 무박을 제안했나 봅니다. 토요일 오후에 잠은 안자도 되고 그냥 지리산 퍼뜩(?) 다녀오자는 꼬임에 빠져 이 죽음의 장도에 겁 없이 나섰나 봅니다. 나는 초여름이라 더우니까 해 뜨기 전에 한 5-6시간 걷다 올 것으로 생각하고 녹음의 지리산을 사랑하리라며 들뜬 기분으로... 더구나 저녁잠 없는 데는 선수라 자신 있었네요.

 

사실 등산 한다고는 하지만 지리산 정도는 초입에라도 가 봐야 한 마디 정도 거들 수 있을 것 같은 알량한 마음으로...(허영심의 발로겠지요) 토요일 10시 김밥 두 줄에 손전등 하나만 들고 해봉(해뜨는 봉우리) 산악회 전세버스에 탔습니다. 새벽 130분에 성삼재에 마치 공비토벌 작전하듯이 숨죽여 내려(야간산행은 금지랍니다) 무조건 말없이 발길을 내딛는 다. 40분 등에 땀이 밸만할 때 노고단 산장은 단잠에 빠져있고 마치 도둑질하듯 노고단(1507m) 위를 향해 땅만 보고 걷고...(생 후 한 번도 접해 보지 못한 1500m 고지... 장난이 아니죠. 연변은 아니라도 여기 지리산에선 1500m 이하는 산 축에 들지도 않습네다) 칠흑같이 깜깜한 산길을 헤드라이트 한개 불빛에 돼지릉, 임걸령과 새벽잠에 빠진 노루목 산장 옆을 지나 서쪽에서 동쪽으로 해를 찾아 걸으니 반야봉(1733m)이 새벽을 막고 섰습니다. 그러나 여지없이 시간은 흘러 뿌연 여명이 산 전체를 감싸고... 벌써 5시경이네요. 반야봉을 뒤로하고 520, 6월 첫날의 아침 해를 봅니다. 새 해 첫날 광안대교를 달리면서 본 해보다 더 붉고 동그란... 차츰 노랗게 변하는 태양을 즐길 겨를도 없이 걷고 또 걷습니다. 경남, 전남, 전북이 만나는 삼도봉(1500m)을 지나면서 전등을 끄고 화개재, 토끼봉(1533m), 총각샘을 지나 무명봉(1586m)을 지나니 연화천 산장에 닿는다.

 

식은 김밥 한 줄에 얼음보다 찬물 한잔 들이키고는 또 삼각고지, 형제봉을 지나 벽소령 산장에 닿으니 830. 밤길, 새벽길을 걸은 지 이미 7시간이나 지났다. 그런데도 왠 등산객이 이리도 많은지...자리깔고 앉아 편히 쉴 틈조차 없어 다시 길을 재촉한다. 누군들 천국을 알며 지옥을 알겠는가? 마의 500계단, 아니 500m 계단... 지옥문을 향하는 것 같이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길, 하나님 똥꼬라도 찌르려는지 끝이 안 보이는 오르막 계단 길...이게 천국 가는 길이라 해도 사양하고 싶다. 이 길이 하늘로 가는 계단이라 하더라도 난 지상에 살고 싶다. 이 계단 길을 만든 위대한 손길을 생각하노라면 나는 무지랭이 벌레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남을 위해 자신을 그토록 불 태워 본 적이 있는가? 그대는?” 이상 연탄 광고 카피 문구였습니다.

 

덕평봉(1522m), 칠선봉(1576m)을 숨이 턱에 차도록 오르니 다시금 영신봉(1652m)이 비틀거리는 내게 일격을 가한다. ! 이제 그만!! 살리 도!!! 등산 경력 20년이 넘는 내 등산 사부도 10시간이 넘어서자 곡소리를 낸다. 선두는 이미 세석산장에 도착했노라 무전을 때려대니 누구 염장 지르나? 잔돌로 이루어진 철쭉세상 세석평전에 닿으니 1230. 출발한지 이미 11시간. 나의 능력 한계를 넘은 지 이미 오래다. 죽어도 세석까지는 가야한다길래 내 전체 에너지를 여기 도착까지 쏟아 부었다. 체력안배고 뭐고도 없다. 이미 초죽음이다. 나는 늘어진 오징어로 흐느적거리며 김밥도 싫다. ! 내 고향으로 날 보내 주! 이제 낙오하고 어디로 내려갈래도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힘은 들었어도 단련은 되나보다. 평소 같으면 1200m 고지만 해도 미리 겁부터 먹는데 지리산에선 1500m 고지 이하는 명함도 못 내미니 그 정도야 이젠 가비얍다. 걷는데 이골이 난 것이다. 죽지 못해 걷는다.

 

주봉 천황봉(1915m)는 다음으로 미루고(, 베스트셀러는 어디든 있쟎는가?) 30분의 휴식 후 남쪽능선을 타고 하산길이다. 이놈의 하산 길은 여느 등산길보다 더 힘들고 길다. 10키로 남짓이면 일전에 갔던 7시간짜리 민주지산 총 산행길이다. 1200-1400m 고지 셋을 넘고서야 마지막 관문 내,외 삼신봉(1354m)에 다다르니 내 다리는 죽은 지 사흘 된 꽃게 뒷다리다. 끝이 날 것 같지 않은 산죽 사잇길로, 돌 길, 바위틈을 돌아 지나 청학동에 이르니 오후 530. 길 떠난 지 16시간에 종주거리 40km. 이거 미친 짓 아니고 무었인가? 그렇다. 결혼은 미친 짓이라 하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지 않는 가? 16시간의 산행이 미친 짓이라해도 무박 2일만 아니라면 다시금 하리라 마음을 다진다. 내가 꼴찌 그룹 앞서 들어 왔으나 누구의 확인도, 아무런 상품도 격려도 없다. 먼저 온 순서대로 이동실 모텔(버스)에 누워 이미 투숙 중이다. 그래! 이 놈의 웬수! 지리산. 내가 아무리 할 일이 없어도 지리공부는 이제 안 할 거다. 이제 복국도 지리는 절대 사양이다.

 

 

*이번 종주 산행에 1733m 1, 1652m 1, 1500m 이상 고지 6, 1400-1300m 7, 1200m 고지 5(지도에 표시된 것만) 이며 성삼재에서 천황봉까지 500m 간격으로 조난구조 표지판이 51개 서있으며 세석평전의 위치는 42번이다(성삼제에서 21km 지점) 남부능선 하산 길은 총 20개로 10km로 총 도상거리 32km, 산행 거리 40km 이며 무박 2일로는 최장 코스로 통하며 여느 산악회도 이 코스를 기획하기 어렵다하며 이번이 국립공원 종주코스로 처음 시도한다고 한다. 성삼재 출발부터 구조표지판을 1에서 2,3,4... 순으로 세며 걷고 (물론 8번까지는 어둠에 묻혀 보지 못하였으나) 하산길에는 두자리, 한자리...5,4,3...카운트 다운을 하면서 잠시 피로감을 속여 둔다. 그래도 위대한 어머니 산 지리산 만만세!

 

*어차피 내려올 산을 무슨 영화 보려고 그리도 기를 쓰고 올랐던고? 아내는 5월에 집 떠난 사람이 6월에야 돌아왔다며 눈을 흘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