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4) 가족 그리고 인기 투표
결혼이라는 걸 하면서 부모의 슬하를 떠나 지지고 볶아가며 10여년 살면서 적어도 재산(?)만은 많이 늘었다. 혼자 살다 두 식구가 되어 배가되더니 어느새 네 식구가 되었으니.... 장녀와 장남이 내 재산이다. 특별히 다른 취미가 없기도 하거니와, 술을 잘 마시지 않아서 인지, 귀소 본능 때문인지는 몰라도 집에 일찍 들어가니 애들에게 잔소리 많은 아버지로 비치지나 않을까 늘 노심초사다. 난 집이 편하다. 한가하게 길게 소파에 누워 바이오 리모콘(물론 장남)으로 텔레비젼 채널을 돌려가며 보는 것도 재미다.
더군다나 애들 어릴 때, 나의 게으름 탓으로 한마디 한 게 일생을 옥죄는 굴레가 되어 버린 것이다. “양육은 당신이, 교육은 내 담당” 그러니 애들이 다 큰 지금이야 애들에 대한 아내의 책임은 없다. 자연히 내가 애들에게 잔소리를 하게 된다. 아직 크게 공부 할 나이가 아니라서 다행히 큰 충돌은 없다. 더구나 큰 딸년의 태도가 ‘결과는 어떻든 일단 시키는 대로는 한다’여서 성적 나오는 하루 정도야 잔소리, 큰소리에, 눈물, 콧물바다지만 다음날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잊고 산다. 그런 딸년을 우리는 ‘성격은 좋다’라고 자위한다. 원래 공부 못하는 애들에게 하는 말이 겨우 ‘사람 심성은 좋다’ 아닌가?
자주는 아니지만 어쩌다 네 식구만 여행을 하게 되었다. 밖은 더운 여름날이라도 시원한 호텔 방 침대 네 개에 나란히 누워 책을 천장 높이 쳐들고 도란거리니 이게 피서로구나 싶다. 이제 애들이 제법 자라니 내 자리는 당연히 창문 밝은 쪽이고 애 엄마는 내외하려는 지 맨 끝 벽 쪽이다. 작은 아들놈이 제 어미 곁을 차지하니 자연 딸년이 내 곁이다. 나도 그게 좋다. 요즘은 아내보다 딸년과 더 가까우니까. 서로 잠버릇 흉보기에, 엄마는 자면서도 대화를 시도하니(잠꼬대) 우리 가족은 대화부족은 없다느니 하며 인신공격에 한껏 웃어 제치다 딸년이 갑자기 인기투표를 해 보자고 제안한다. 평소 우리 집은 민주적, 평등하다 못해 여성지배라며 내가 오만한 푸념을 해 보기도 하지만 절대 내 지위를 양보하는 경우는 없다. 결정할 사항이 있으면 의례 내가 51%, 아내가 40%, 딸애가 5%, 아들은 4%여서 저희 셋 다 모아도 49%밖에 안되니 애들은 도대체 뭘 할 수가 없다며 독재가 심하다고 언제나 불만이다. 내 의견만이 옳다는 건 아니지만 누구 의견이든 옳다면 기꺼이 따르리라는 게 내 맘이지만 나이 들수록 애들의 머리는 커지고 아내마저 못 믿을 당신이 되지나 않을까 두렵기까지 하다.
그러나 인기투표라면 적어도 나는 한 표는 확실히 확보한 상태 아닌가. 누가 내 작전을 알겠는가? 한 10분간 유세가 있었는데 아내는 상욱이를 꼬시느라 안아주고 볼을 비비고 난리다. 딸년도 뭘 줘가며 누나 한 표를 부탁한다며 연신 분주하다. 나야 ‘김상욱, 남자로 정당하게 소신껏 알지’ 한 마디로 끝냈다. 간단히 한사람씩 이름을 적어 내니 그야말로 10초밖에 안 걸리는 세상에서 가장 간단한 투표가 끝나고 짜잔~~ 결과가 공개되었다. 딸년이 두 표, 내가 두 표였다. 아내가 나를 찍은 모양이다. 좋으나 싫으나 그래도 가장의 위상을 위해서 한 표를 기꺼이 주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상욱이는 제 누나가 선거 유세 때 몰래 준 사탕 하나에 엄마고 남자의 의리고 뭐고 다 헌신짝처럼 저버리고 누나를 찍은 것이다. 물론 딸년은 제 욕심에 제 이름을 찍었고..... 내 작전이 사전에 노출된 것이다. 아! 세상에 딸년이고 아들놈이고 누구를 믿을까. 나의 이러한 회한보다 애들이 느낀 아빠에 대한 실망감도 못지 않았으리라.
앞으로는 좀 더 독재의 고삐를 더욱 단단히 조여, 이런 동점의 치욕이 다시는 없기를... 아니 인기투표라느니 뭐니 하는 불손한(?) 의도를 원천 봉쇄하리라 다짐한다. 10.26의 주역세대에다 독재정권을 욕하던 나 아닌가. 그러고는 이내 ‘이게 무슨 민주적 가장이냐’라는 자괴심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애들아! 많이 컸구나. 고맙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라도 아비의 위상을 지키려는 나의 눈물겨운 마음을 알기나 하느냐? 애들의 견해도 반영시키고 나의 권위가 손상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올해부터는 50:50으로 하고 동점일 때는 케스팅보트는 내가 쥐기로 합의했다. 애들은 아직 케스팅보트가 뭔지 모르니까......... (2000년 여름 휴가를 경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