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의 남자애들은 초등학교에 처음 가면 공부보다 싸움이 더 관심사인가 보다. 첫날 등교 후 의례 싸움 2등, 공부 3등으로 정해진다. 이건 거의 매 학기 변함이 없다. 그러다가 학년이 차츰 올라가면 싸움 등수는 거의 변화가 없는 데 반해 공부 등수는 차츰 내려간다. 초등학교 6학년 정도 되면 이젠 5,6등은 맡아 논 당상이다. 반 편성을 새로 하면 애들도 많이 바뀌련만 거의 일정한 등수에 의아해 한 적이 많다. 개학하자마자 한 반 3-40여명과 다 겨뤄 보지도 않았을 텐데 싸움 등수가 딱 정해지는 걸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자슥 개학날 종일 싸움만 하고 왔나’하는 의구심을 품을 때도 많았다.
그런데 수년간 지켜 본 결과(내 아들놈은 올해 초등학교 졸업했다) 이건 실제 등수와는 관계없이 저 스스로 매긴 등수라는 걸 알게 된다. 똥개도 제 집에서는 끗발 부린다고 학기 초 40여명쯤 한 반에 모아 놓고 보면 1반에서 1반으로 진급한 한, 두 놈 기선 제압용으로 전체 학생을 한번 힐끗 훑어보는 녀석들이 있다. 그러면 그 눈빛과 마주치기만 하면 등수는 자동으로 2, 3, 4등으로 내려간다. 혹시 하교 길에 시비라도 한 번 받으며 아예 집에서 싸움 등수는 언급도 않는다. 즉 등수 이하가 된다. 골목길서 껌 좀 씹고, 침 찍하는 녀석들이라도 만날라치면 이미 그놈들은 전교 등수에 넣어 버린다. 즉 단수가 서로 달라 비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한다. 그래서 고학년이 될수록 싸움 등수에 대한 언급도 자연 없어진다.
그러면 공부 등수는 어떤가? 요즘은 교육 평가 방식도 바뀌어 초등학교에서는 숫제 평가시험 자체가 없나 보다. 예전 수, 우, 미, 양, 가로 나오던 학습 결과와 가, 나, 다로 표시하던 행동사항이 이제는 모두 서술형으로 바뀌어 가정 연락부에는 칭찬 일색이다. 공부를 못하면 그 내용은 안 쓰고 ‘매우 활동적이고 교우간 인간 관계가 좋으며(이 말은 놀기만 한다는 완곡한 표현이다) 진취적이고(장난이 심하다) 개성이 강하며(말을 안 듣는 다는 표현) 음악 미술 등 예능에 소질이 있다(이는 공부에는 싹수가 노랗다?) 어쩌고저쩌고’ 써 있다. 즉 각자 개성을 존중하여 소질 교육을 시키기 때문이라는 데 도대체 글도 못쓰고 셈도 제대로 못하는 놈들의 적성이나 소질을 어디에 써먹자고 그러는 건지 원... 그런 좋은 표현만 쓰시는 선생님들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리라는 생각이 든다. 통지표가 나오던 우리가 어릴 때 들은 이야기가 있다. 어느 부형께서 아들의 통지표에 ‘가, 가, 가, 가, 양, 가, 가, 가’ 인 것을 보고는 한 마디 하셨단다. ‘너무 한 과목에만 공부를 치중하니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다. 다음에는 골고루 공부해라’ 하시더라나? 공부 못하는 자식이 주눅 들까봐 학기말 성적표가 나오면 ‘올해는 양을 몇 마리나 몰고 오셨나’하던 부모도 계셨다고 한다.
그런 추억은 없어지고 이제는 어쩌다 시험을 쳐도 기록으로 남지 않고 대개는 애들에게 시험지를 되돌려 주는 것으로 끝을 내는 모양이다. 또한 시험이 평가 수단이라기보다는 이해를 돕는 차원에서 쉽게 내기도 하고. 그러니 자연 여간 못해도 70, 80점, 좀 잘하면 95, 100점을 맞는 모양이다. 올 백이란 유행어도 나오곤 했으니까 말이다. 그런 점수를 받으면 어린 마음에도 우쭐하여 비교해 보고 싶은 생각은 드나 보다. 저학년 때는 아직 친구가 많지는 않으니까 일단 옆 짝꿍과 점수를 비교 해 본다. 여지없이 2등이다. 더 이상 다른 애들과는 비교해 보기도 싫고 그냥 스스로 2등으로 정해 버린 것이다. ‘뭐 선생님이 간섭할 일도 아닌데 어때‘ 하면서. 차츰 5, 6학년이 되면 90, 95점이 어디냐 너 정말 오랜만이구나, 얼씨구나 하며 이젠 양 옆, 앞뒤로 부산하게 훔쳐본다. 그때부터 석차는 대개 5, 6등은 수월챦게 나온다. 다른 애들은 고액 개인 과외를 하니까 점수를 잘 받지만 나는 학원도 안가고 5등이면 잘 한 거지... 하교 길 내내 자위하며 돌아온다. 이때쯤부터는 학교생활을 그리 떠벌리지 않고 말수가 줄어든다. 뭐든 즐겁고 제왕처럼 지내던 유년시절이 저물고 세상의 쓴맛이 차츰 느껴지는 때다. 하자니 힘들겠고 안 하니 창피하고.... 선택의 기로에 서서 고민이 시작되는 것이다.
아! 인생이 이런 것이었다면 차라리 선택하지를 않았어야 할 걸... 자못 철학적이기까지 하다. 예전에는 대문부터 시끄럽던 녀석이 오늘 뭐 배웠어 물어도 별 반응이 없어진다. 말없는 사춘기가 이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달리 과묵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별 할 말이 없어서인 것이다. 싸움이니 성적이니 떠벌리다간 탄로 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올해 고1인 우리 장딸은 이번에도 4등이란다. 아마 양 옆에만 점수를 비교하고 그만 둔 모양이다. 더 이상의 추락을 확인하고 싶지 않은 이리라. 확인된 초라한 10등 이하보다는 제한적이긴 하지만 우아한 4등을 고수하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아직도 초등학교 그 버릇을 버리지 못 했나 싶으니 서글퍼지기도 한다. 계집애라서 그런지 싸움 자랑은 없었지만 이 때쯤이면 싸움 등수는 흑장미니 칠공주파 깡녀들이 다 차지하기 때문에 일반 학생들은 그냥 하향 평준화하여 동률 20위 정도니 서로 대 보고 말고 하지는 않나 보다. ‘이럴 때 모르는 게 약이다’ 참 속담도... ‘아는 게 병이야’. 아들놈은 태권도를 열심히 다니는 탓인지 여전히 싸움 2등, 공부 3등이다. 아직은 세상이 즐거운 초등학교니까... 그러나 누가 그 속을 알랴!
사정이 이러니 솜털 보송보송하던 딸애가 말만해지고 야들야들하던 아들놈이 뻣뻣해지면 자연 집안 대화는 단절되기 시작한다. 제 필요한 용돈만 받으면 부모와의 대화 끝, 각자 생활 시작으로 우선 문부터 닫고 본다. 괜히 말 붙혔다가는 학교 성적 탄로 나기 일초 전인 것이다. 시험 성적 나오는 연 4회 눈물 찔끔거리는 것으로 대체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애들과의 대화를 조목조목 재미있어 하여 한 번 시작하면 끝이 없을 정도인데 비하여 어미가 한 성질 하는 통에 일찍부터 어미와의 대화의 통로는 막혀 있다. 대화는 10초 이내로 족하다. ‘빽’ 한마디면 끝. 나도 이젠 나답지 않게 대화 끝내는 법을 배워 간다. '됐나? 됐다. 끝.'
직장이며 집안 일로 혼자서 이 인분 이상의 일을 하고 요즘 들어서는 러닝과 스트레칭도 아주 열심이다보니 아내는 등만 붙이면 바로 골아 떨어지는 아주 건강한 잠을 잔다. 그렇다고 대화가 영원히 없을 수는 없는지 이렇듯 자주 대화가 단절되다보니 어미는 밤만 되면 어김없이 대화를 시도한다. 헛소리! 그것 옆에서 대꾸해 주다보면 아주 길게 이어진다. 그것이 어미의 가족에 대한 대화의 한 방식이라고 정의한 이후부터 우리 집은 대화 부족이란 말이 사라지고 대신 밤낮으로 너무 자주 대화를 해서 탈이라는 자조 섞힌 웃음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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