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후기-7) Polar Bear Swimming(북극곰 수영대회)

Dr조은샘 2021. 12. 17. 13:24

북극곰 수영대회(Poar Bear Swimming) 후기 (1/26)

 

같은 하루의 지루함이 우리를 단조롭고 우울하게 한다. 매너리즘이 그래서 나온 말인가? 다양성이란 이름으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음식도 처음에는 그저 시장기를 속여 두는 단계에서 좀 더 물산이 풍부해지면 이제 다양한 맛을 찾아 나선다. , , 색깔, 모양, 소리까지 구분해 가며. 이 단계를 넘어서면 이젠 잘 못 보는 진귀한 식재료 단계로 들어선다. 熊掌, 猩脣으로 대표되는 八珍味가 무엇이더냐? 象鼻, 鹿筋으로 만든 滿漢全席 또한 진귀한 재료들이다. 그 다음이 가학적인 단계다. 세계 최고의 맛이라는 프아그라는 집오리 간을 위에 강제로 후추, 고춧가루, 소금 등을 뿌려 넣어 부풀게 하여 요리한다니... 세상에...

 

하여 좀 더 다양한 경험을 찾아 나선다는 게 겨우 등산이나 런닝 정도가 전부였다. 그것도 늘상 먹고, 마시고 노래로 노는 것에 비하면 백 번 다채로운 호사다. 그러나 등산과 런닝도 이제는 혼자서만 하는 재야 수준을 넘어 제도권으로의 진입을 할 때임을 절실히 느낀다. 등산도 해 보면 오댕 냄새 폴폴 나는 500m 수준이 있고, 아직 막걸리 냄새가 채 가시지 않는 1000m 이하 수준도 있다. 이 정도의 높이야 부산 근교에도 지천에 늘렸으니 별다른 지식이나 가이드는 별반 필요지 않다. 산행을 처음 시작할 땐 불만도 많았다. 도대체 지도에 표시가 없으니...하고. 그러나 운전초기에도 방향을 틀려면 핸들을 몇 도로 돌려야하는지 지침이 없어 난감하던 때가 없진 않았던 것처럼 이젠 지도 없이 감각으로도 길을 잘 찾아 나선다. 이젠 적어도 1500고지는 밟을 때 아닌가? 그러자면 자연 먼 곳으로 이동도 하여야 할 것이고 전문 산악가이드도 필요하게 된 것이다.

 

런닝도 15km나 하프 정도는 혼자서도 가비얍다. 자주 물도 마셔 둔 터라 물이 없어도 상관없지만 허나 더 멀리 두 시간 이상이나 달려야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중간에 물이나 간식이 공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누가 나 달리는 데 그런단 말인가? 하는 수없이 내 의사와는 달리 제도권으로의 진입이 절실해지는 것이다. 하기야 마실 것, 먹을 것, 짊어지고 달리는 경우도 없진 않지만...쯧쯧 얼마나 인간관계가 메말랐으면 저럴꼬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렇다. 내가 한 번 봉사하면 열 번을 제대로 달릴 수 있는 게 제도권 아닌가? 또한 나보다 훨씬 더 전문가들이 포진되어 있는 관계로 런닝 실력도 일취월장할 것임에 틀림없다. 조만간 제도권으로 진입하기로 하고...

 

그 인생의 다양성의 일환으로 올해 처음으로 북극곰 수영대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우리가 런닝 연습하는 동백섬 해운대 조선비치 호텔에서 주최하니 우선 가깝고 아들놈도 호연지기를 느끼게 하고 싶었다. 작년 말에 정보를 입수하여 아들놈과 둘 인터넷으로 등록했다 경비도 1인당 30,000원이니 만만챦다. 아들놈이야 15키로를 달리거나 수영대회 참석으로 마술 책을 살 수 있으니 싫어도 군말이 없다.

 

일주일 내내 일요일 날씨에 신경이 곤두서 있다. 아무래도 대한 추위가 있으려니 하니 겁부터 난다. 다행히 주일 내내 날씨가 영상으로 포근하여 일부러 런닝복 갈아 입을 때 홀라당 벗어 보기도 하고.. 이만하면 겨울날씨치고는 괜챦네 정도로 위안도 삼아 보았건만... 하나님이 자연에 역행하는 행사를 하는 교만한 인간을 그냥 두고 싶지 않으셨나 보다. 오늘따라 여지없이 영하에다 거센 바닷바람에 흰 백두파가 삼킬 듯 드세다. 겨울비는 그래도 얼음보다는 따뜻한 편이라지만 이 한 방울의 비가 발가벗은 피부에 닿을 때면 뼈 속까지 추위라는 이름으로 파고든다. 참가자 식구들 하여 5,000명은 족히 될만한 사람들이 겨울백사장에 모였다. 난 첫 눈이 올 때 강아지도 기뻐서 폴짝 뛰는 줄 알았다. 그게 아니라네? 강아지는 양말도, 신발도 벗어 발이 시려 그런다나? 맨발에 발가벗고 영하의 비바람이 몰아치는 겨울백사장에 서니 뛰지 않고는 베겨 내 수가 없다. 이미 발은 얼어붙어 감각이 없어진지 오래고...

군 시절 단체기합으로 영하 20도가 넘는 연병장에 세워 놓고는 내무반장이 손가락끝으로 물을 튀겨 살갗을 에이게 하던 기억이 새롭다. 추적추적 내리는 겨울비가 온 몸을 마비시킨다. 이 무슨 사서 고생? 그러나 나 말고도 몇 천명이 서울, 광주에서 경비 들여서 오는 걸 보면 뭔가 있긴 있나보다 싶어 본전 생각에 마지막 남은 오기를 부려본다. 일단 목표는 덜덜덜 안 떨기로 정했지만 몸을 가만 두기가 어렵다. 이게 내 맘대로 하는 내 몸이 아닌 것이다.

 

겨울엔 물에 들어가면 더 따뜻하다더란 말이 생각나 준비 운동을 하다 말고 냅다 파도 속에 몸을 맡겨 본다. 일순...냉탕에서 고온탕 들어가는 것처럼 온몸을 바늘로 찌르는 것 같다. 그래도 파도는 밀려오고...손발을 허우적거리니 손,발가락, , 다리 마디마디가 저려 온다. 이러다 정말 손발이 얼어붙어 마비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도 해 본다. 심장마비가 별건가? 그래도 움직여야 산다는 일념으로 앞으로 더 나아가 본다. 저 멀리에 안전요원들이 점점이 떠 있는 게 보이는 순간 산더미만한 파도가 밀려오고 나는 한껏 까치발까지 해 가면 일어서 보았지만 내 머리 위로 파도가 지나가는 중이었나 보다. 경상도 말로 갱물을 한바가지나 먹는다. 입으로 코로 짠물이 나오는지 들어가는지.....찡한 콧등 위로 골까지 멍해 온다. 나가자. 119도 있고 엠브란스도 보았다. 엉금엉금 기어 나오는 등 뒤로 또 파도가 나를 패대기친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참석자 중 태반은 아직 발 끝에 물도 뭍히지 않고 있다. 나야 용기가 아니라 본전 생각나 만용으로 뛰어 든 거지 맨정신으로야 어렵지.

 

겨우 몸 가림 수건 한 장 얻어 들고 백사장을 걷는다. 이미 내 발이 아니다. 불과 500m 남짓한 거리를 요기들이 불 위를 걷듯, 달걀을 밟고 걷듯 그야말로 동태 한 마리가 절절대며 걷는 형상이란... ! 이 무슨 늙으막의 고생인가? 고생은 젊을 때 사서 하랬는데... 그러지 않은 데 대한 벌인가 보다. 일단 바람만 피해도 살맛인데 비까지 피하여 실내 수영장으로 들어오니 난방이 왜 필요한지 이해할 수가 없다. 여기만도 천국인데... 난생 처음으로 45도 고온탕에 몸을 담궈 본다. 찌리릿하면서 동태가 해동 모드로 들어간다. ! 기분 상쾌. 이제서야 발이 풀리면서 내 맘대로 발가락이 움직여 준다. 고맙다. 내 발가락... 영원히 고온탕에서 나오고 싶지 않더만.... 그래도 아침이 부실했는지 배가 고프다. 극한을 지나니 이제사 식욕이 동하는 것 같다. 호텔측에서 제공하는 도시락을 넓은 해운대를 내려보며 까먹는 재미 또한 버릴 수 없는 호사 아닌가?

 

겨울비는 아직도 추적거리는 데 속절없이 하루가 지난다. ! 내 돈 돌리도!

오늘이야 겨우 30분에 불과했지만 4월의 경주 마라톤에 2-3시간을 죽을 생각하니 이게 뭔 미친 짓인가 미리 걱정만 앞선다. 그래도 살아 돌아오리라. 승전보를 다시 보내리라 헛 약속으로 마음을 다져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