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남기고 싶은 글

글-10) ‘초라한 싱글에서 화려한 더블’로의 비상에 대하여

Dr조은샘 2021. 12. 14. 11:42

요즘 화두의 하나가 "화려한 싱글, 초라한 더블"이다. 장가 안가겠다는 사람은 없는 데 시집 안 가고 살겠다는 사실이 사회의 이슈가 된지 오래다. 글쎄... 정말 초라한 더블보다는 화려한 싱글일까? 트랜스젠더는 남녀의 행복을 다 가질까? 동성애 커밍 아웃이 보도되더니만 그 정도는 약과인지 남녀 양성 내지는 남녀변이가 화제다.

 

그런데 나는 아직 종교를 수용하지 않아 이런 말할 자격도 없는 지 모르지만 종교인들이 무식하거나 맹목적이어서 종교를 믿는 건 아닐 것이다. 거기에는 우리같은 종교없는 사람들이 모르는 뭔가 인간의 생활에 도움이 되는 요소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보다 더 보편적인 인간생활의 제도 하나가 바로 결혼일 것이다. 현재 60억의 인구, 그리고 우리 앞서 살았던 몇 백, 몇 천억의 사람들이 거의(나인 나인 이상) 결혼이란 제도를 수용하고 살아 왔던 것이다. 정말 독신으로 산 소수의 사람들이 있긴 했다. 그들의 소수가 결코 무식해서 독신으로 살았다고 말하는 건 아니나 그들보다 훨씬 유식하고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했다는 사실이다. 대개 주위에 있는 독신들을 보면 아직 제대로 짝을 못 만났을 따름이지 독신 그 자체를 초지일관 밀고 나간 것은 아닌 듯 싶다.

 

결혼하기 전까지야 누구나 독신 아닌가? 다만 그 상태가 좀 길게 연장되거나 흔치는 않지만 죽을 때까지 연장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독신이란 말을 쓰는 것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런 독신을 부르짖는 건 대개 여자인 경우가 많은 데 우리의 기억에 독신으로 평생을 산 사람 중엔 남자가 더 많은 것 같다. 2,30대에 아주 강한 독신주의자가 40대를 넘기면서 맥없이 폭 사라지는 걸 자주 본다. 그럴 때마다 제때 제대로 산다는 것이 그들에겐 참 어려웠나 보다 생각한다. 재밌는 영어 유머가 있다. “I was a virgin" 이 한마디면 미국 다 뒤집힌단다.

 

우리는 나 31, 아내 28에 결혼을 했다. 난 원래 게을러서 혼자 사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 지 일찍이 깨달았다. 하숙생활이 내 전성시대였다고는 생각하지만 평생 그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해서 평생 같은 하숙집 아줌마 밑에서 살고 싶었던 게다. 물론 아내를 단순한 밥쟁이로만 생각하는 건 절대 아니다. 그것도 일부 포함된다는 것이지. 참 좋다. 젊은 날은 그 사랑의 열정으로 좋았고 새끼들은 또 얼마나 나의 삶을 다양하고 윤택하게 해 주는 지... 키울 때는 제 자식 귀여운 줄 모르다가도 다 크고 나면 그리 애들이 귀여워 보인단다. 내가 그렇다. 애기들이나 꼬맹이가 지나가면 그냥 귀여워 죽을 것 같다. ! 지금부터 이렇다면 내 손자 기다리려면 아직 15년은 족히 기다려야 한다. 어찌 할아버지에게 손자가 아니 귀여우리요. 나이가 드니 자식들은 스스로 큰 하나의 개체가 되어 더 이상 엄마, 아빠를 찾지 않게 된 지금은 꼭 아내가 여자가 아니라도 아주 편한 친구가 하나 있어서 좋다.

 

이 모든 걸 종합해 보면 싱글이 죽어도 초라하다는 건 아니지만 더블이 되지 않고는 결코 인생이 화려하게 만개할 수는 없으리라. 싱글은 자신이 만족하는 선 내 제한된 반면 더블이라고 보장되는 건 아니지만 둘이 노력한다면 그야말로 오뉴월에 개화하듯 인생을 행복하게 수 놓을 수 있다고 단언 해 본다. 여자 싱글들의 더블에 대한 최대의 우려는 결혼은 곧 여자의 무덤이라는 것이다. 맨날 밥하고 빨래, 청소나 하는 가정주부로 전락하여 애 뒤치닥거리로 인생을 허비하는 게 억울하다는 것이다. 평생 부엌데기로 사는 건 체질이 아니라는 거다. 좀 더 자유롭게 살며 제 이상을 실현하고 싶다는 게 그들의 변인 것이다. 가정사에만 충실하여 제 위치를 찾아가는 많은 여자들도 많고 그것 또한 밖에 나가 일하는 이상으로 중요한 일일 수도 있으나 헛바람 난 여자들은 그렇게 알뜰살뜰 살아갈 자신이 없는 것이다. 안을 버리고 밖을 지향하나 안이 부실하니 밖은 보나마나 뻔한 걸 본인만 모른 체 하는 것이다.

 

우리도 서로 강한 두 개성이 만나 처음에는 많이 갈등하고 싸우고 힘들었다. 더구나 애를 둘씩이나 가진 직장 일하는 아내를 생각하노라면 지금도 미안타. 얼마나 힘들었을꼬? 나는 나대로 직장다니며 만학을 하던터라 내 한 몸 추스리기도 어려울 때였다. 먹여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어 학교는 내 월급 손 안대리라 하여 없는 시간 쪼개어 시간강사로 학비며 공부 경비를 충당하였기에 직장이며 학교 수업에 실험에 강의에 때로는 학회 발표며 혼자 3인분 일을 한 것 같다. 그런 와중에 둘째 놈이 태어나서 낮엔 가짜 엄마가 돌보아 주었지만 밤시간엔 초저녁, 새벽으로 시간을 갈라 둘이 번갈아 가며 애를 돌보았다. 작은 놈은 유난히 예민하고 울음이 많아 아내는 비오는 날 대문 밖 어둠 속에서 모자 둘의 울음을 동시에 달래곤 했다. 유아 콜릭이란 듣도 보지도 못한 병이 어린것을 괴롭힌 것이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아내더러 학교 석사과정 등록하면 내가 애 많이 봐 줄께 했더니 그날로 당장 시험 쳐서 야간 대학원을 다닌 것이다. 사실은 나만 학교 다니기 미안해서 그래 본 것인데 아내는 작심하고 애한테서 해방되어 볼까하고 시험을 친 것이다.

 

그날 이후로 전쟁은 더욱 격화되었음은 자명한 일이고... 나라는 위인이 어디 그렇다고 애를 봐 줄 사람도 아니고... 아내의 일만 일인분 더 늘어난 것이다. 둘이서 5,6인분 일을 한 것 같은 시절이었다. 그리고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 우리는 둘 다 학위과정을 마치고 애들도 많이 컷다. 화려한 비상을 위한 5년간의 사투였다. 내가 혹은 아내가 결혼이라는 무덤에 빠졌는가? 더블이어서 초라해졌는가?

 

처녀들의 화려한 싱글로의 기대는 자신이 없다는 증거인 것이다. 노력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싱글이든 더블이든 그게 문제가 아니다. 어떤 상태에서건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초라한화려한이 갈라지는 것이지 결코 결혼한다고 초라해 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한가지만 묻고 싶다. 물론 애들로 인해 골치거리가 생기지 않는 건 아니지만 단위생식이 과연 가능한가? 제 아이 키울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사람도 자식들이 뻣뻣해 질 때쯤이면 지나가는 고만고만한 것들을 귀여워한다. 나도 내 아이가 둘 다 10살을 넘으니 지금부터 남의 꼬맹이들이 좋아 죽겠다. 이런 상태로 아직은 20년이나 더 기다려야 내 손주를 볼 게 아닌가? 과연 그때까지 기다릴 수나 있을려나 모르겠다. 할아버지가 손주를 보는 기쁨... ! 상상이 가질 않는다. 이게 다 초라한 더블로의 용기 있는 첫 걸음의 덕분임을 더 이상 말할 나위가 없다. 그래... 싱글이 필연적으로 덜 행복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각자 개성껏 화려할 수도 있으나 더블이 되지 않고는 결코 개화한 인생의 침 기쁨은 맛 볼 수 없는 게 사실이다.

 

화려한 더블로의 비상! 이것이 있어 우리 앞선 선각자들이 처음에는 좀 초라해 보이는 더블로 시작해서 마지막에 화려함의 극치에 이른 것이다. 다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결혼이 불행하기 시합만 않는다면 행복의 문턱엔 이미 들어선 것 아닌가? 초라한 싱글이여 안녕, 화려한 더블 만세! 싱글들의 생각 중 하나는 이럴 것이다. ‘아하! 나는 싱글로 살아, 아이가 귀찮아 못 낳더라도 내 자식한테는 꼭 귀여운 손주를 낳아라 해야지오호! 그거 참 말 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