電氣나 電子를 전혀 모르는 凡夫라도 텔레비젼, 라디오, 비디오, 오디오를 잘만 다룬다.
이런 家電製品처럼 컴퓨터도 켜고 끄는 것만으로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시대가 머지않아 到來하리라는 생각에 여태껏 반 컴맹으로 살아왔다. 겨우 Internet, Word-processor, Graphic, E-mail 정도 이용하는 수준으로...... ‘그래. 얼마나 머리 좋은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를 연구하는데 그런 것 하나 해결 못하겠어’ 하는 自慰도 해 보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런 여유를 깡그리 무너뜨리는 일대 事件이 생겼다. 몇 년째 해오는 일이지만 첫 學期 수업 중에 리포트를 話頭처럼 던졌더니 學生 하나가 “敎授님, ID 알려 주세요. 電子郵便으로 리포트 올리겠습니다”하는 게 아닌가? 일순간 아니 뭐라고? 하며 당황했지만 이내 냉정을 찾아 “응- 저 XXX" 라고 이름 略字를 일러주고는 쫓기듯 나와 그날로 당장 組立 컴퓨터를 구하고 모뎀 사 달고 겨우 ID 登錄하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데 일주일만에 그 學生의 리포트가 올라와 있었다. 바이너리로 보내져 받아 보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敎授 體面에 學生들에게 일일이 물어 볼 수도 없고...... 아! 新世代 가르치기란 너무 힘들어! 삐삐도 차야하고 숨가쁘게 빠른 노래도 부를 줄 알아야 하나?
그런데 이 通信과 電子메일의 便利함이란 이루 말로 다 하지 못할 정도이다. 그 중 한가지로는 電子政治時代라는 말에 걸맞게 大統領과 靑瓦臺에 바로 建議 告發이나 民願을 낼 수 있는 "go bluehs, 大統領에 바란다"난이 있어 영부인께는 물론이고 政治 전반에 대한 비판이나 自身의 意見을 바로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보낸 意見이 얼마나 受容되고 있는지는 잘 모를 일이지만...... 아직도 5. 18에 직접 참가했던 당시의 現役 軍人들이 스스로 입을 열지 않고 있는 時代의 雰圍氣를 감안한다면 대단한 言路의 開放이라 아니할 수 없다. 우리 나라의 民主化 정도를 皮膚로 느낄 수 있는 대단한 進步가 아닌가하며 기분이 좋아진다.
몇 달 전, 그러니까 컴퓨터 通信을 開通하고서 기왕 돈 내고 가입했으니 이걸 어떻게 보다 有用하게 사용하나하고 苦悶하다 마침 大統領의 一連의 言行에 대한 나의 見解를 올리고 싶었다. 즉 “韓國通信의 勞組 爭議를 國家 顚覆 次元에서 다루겠다.” “쌀을 輸入해서라도 北韓을 支援 하겠다.” “造幣公社 紙幣 流出 事件 申告者 表彰하겠다.” 등 등...... 그때 表現이 정확했는지는 現在로서는 자신이 없지만 대강 이런 내용에 대한 國民의 한사람으로 느끼는 생각을 보내고 싶었던 것이다. 韓國通信 罷業이 國家 顚覆이면 電氣, 水道나 公務員이라도 罷業을 하게 된다면 그땐 核으로 對處할 것인가? 하기야 軍人이 罷業(?)하여 國家顚覆이 되다시피 한 經驗을 한 우리의 實情에 비추어보면 大統領의 그런 覺悟도 무리는 아닐지 모르지만...... 또한 北韓의 行態를 생각해 보면 정말 憤痛 터지는 일 아닌가? 大統領께서 직접 表彰했는지는 確認할 길이 없으나 그런 정도는 하부 地方 行政官署에서 할 일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얼마나 더 크고 복잡한 일이 많으신 대 大統領께서 친히 그런 일까지 챙겨야 한단 말인가...... 대강 이런 내용의 意見을 보내고 싶었으나 끝내 보내지 못했다. 솔직히 실토하건대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身分上의 不利益이 두려웠던 것이다. 하기야 末端 敎授 身分에 不利益이 있어 봐야 얼마나 損害 볼 게 있으랴하는 自問도 해 보았지만 또 다른 紛亂은 없을까, 아내와 子息이 시퍼렇게 살아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스쳐지나가곤 했다. 그러고 보면 나라는 사람도 보브뤼낀이 말한 대로 전형적인 인텔리겐챠(힘없는 知識人) 부류임에 틀림이 없다.
그때 비겁한 勇氣를 부끄러워하며 안으로만 삭이던 記憶을 새롭게 해 주는 사건이 學期末에 터지고야 말았다.
나야 學校側에서 필요하여 招聘된 敎授 要員이니까 學校當局에서 나를 評價하고 말고 하지는 않는다. 더구나 내 講義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서로 아니다로 판단되면 次期에 委囑 하지 않으면 그만인 것은 三尺童子도 아는 사실 아닌가. 나도 싫음 그만이고. 그러나 大部分의 大學 敎授님들이 어떤 형태로든 評價를 받는 時代임을 감안하여 나도 講壇에 서 있는 만큼 學生들이 나의 講義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한 評價를 받아보고 싶었다. 물론 어디에 報告해야 한다거나 身分上의 不利益을 감수하지 않아도 되는 전적으로 내 선에서 끝나는 일이니 더욱 關心이 갔다. 서로가 收容할 수 있는 범위의 의견은 收斂하여 다음 學期 講義에 參考하고 싶기도 했고..........
마지막 時間에 無記名으로 한 學期 동안의 講義評價書를 작성하라고 1시간을 할애하고 나와 기다렸다. 다음 評價書를 거두는 내 마음이 자못 떨렸다. 아무렇게나 맘대로 써낸 評價書에는 대부분 ‘......이 좋았다’라는 阿附性 評價와 ‘실제 理論이 쓰이는 곳을 상세히 說明해 주면 좋겠다’와 같은 절실한 要求와 ‘말이 좀 빠르다‘라는 不平도 간간이 있어 시큰둥한 마음으로 넘겨보고 있는데 그 중에 몇몇 學生이 공통적으로 내 講義가 ’죽은 詩人의 社會‘와 같다고 쓴 게 아닌가? 이게 또 무슨 말이지? 講義 내용이 죽은 것 같단 말인가? 도대체 키팅 先生은 어떤 사람이란 말인가? 갑자기 머리가 혼란스러워지고 학기 초 ID 묻던 때 보다 더욱 당황스럽다. 잘못하다 들킨 사람처럼 가슴이 콩당 거리고 할말을 잊어 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學生들은 알고 있는 內容을 敎授가 까맣게 모른다는 사실을 學生들이 눈치라도 채면 이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침을 꿀떡 삼키고 “네, 대강 보니 여러 가지 좋은 意見들이 많네요. 다음 學期에는 더욱 알차게 열심히 해보도록 합시다.” 하고 마치고 나오니 뒤통수가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아! 新世代와의 세상살이는 너무 힘들어......
마침 다음날로 放學이고 會社 業務도 한가한 때라 급히 ‘죽은 詩人의 社會’를 구해 읽었다. 소문에 들으니 映畵로도 상영이 되었고 비디오도 있다하여 모처럼 구해 보았다. 은근히 기분이 좋아졌고 나를 그렇게 評價해 준 學生들이 고마왔다. 틀에 박힌 一律的인 敎育 方式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롭고 眞正한 人性敎育을 추구했던 키팅 先生과 나의 授業을 엇비슷하게 評價해 주다니......
그래, 學生이 배우는 知識은 冊 속에 얼마든지 있다. 學生이 진정으로 배우는 것은 先生이란 人間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知識을 傳授하는 것은 나 아니어도 되고 심지어는 꼭 人間이 할 必要마저 없어지는 時代에 살고 있음을 느낀다. 敎授란 어떤 사람인가. 먼저 경험하여 學生들의 多樣한 未來를 열어 주는 사람이 眞正한 先生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금 생각해 본다. 나 自身이 靑瓦臺에 建議 한마디 못한 부끄러운 勇氣의 所持者임을 아는데 내가 學生들에게서 그런 評價를 받는 것은 더욱 부끄러운 일 아닌가? 그리고 앞으로도 흔들림 없이 지금처럼 學生들의 人性을 啓發하기 위해 힘쓸 수가 있을까? 정말 그때는 講義 評價書에 적힐 한 자, 한 자에 신경 써가며 조심조심 講義 할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前에 없이 時局宣言에 동참하는 良心的인 敎授님이 많아졌다. 그분들도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身分上의 不利益을 감수하면서도 正義 民主社會 구현에 발 벗고 나서신 것이다.
學生들이 나에게 勇氣를 주었듯이 앞으로도 계속 내가 그들이 眞正한 人間性을 회복하고 自由로운 未來를 펼칠 수 있도록 身分上의 不利益을 감수해가면서까지 나의 뜻대로 講義를 계속할 수 있을까하는 疑問을 감출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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