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3년 早春의 斷想을 가을에야 적어 본다. -
나는 내 성격을 까다롭다고 하는 다른 사람들의 말에 아무 소리 못하고 일단 수긍한다.
아내의 말을 빌리면 까다롭다 못해 깨 까다롭다고 한다. 나도 인정한다. 더군다나 먹거리나 매사 생활 전반에 대해서 제법 입을 많이 대는 편이다. 음식 문제는 아내가 지난 10여 년간 고생했고... 술이나 거나하게 취해 얼큰한 해장국으로 만족했다면 아내가 좀 더 편했을까? 남자가 음식상 앞에 그러는 것 아니라고 배웠으나 기왕 먹을 것이라면 좀 더 갖춰 먹자는 것이다. 결코 값비싼 식재료가 아니라 시때가 맞는 세시 식재료를 구하여 값싸게 영양을 보충하고자 하는 것이다. 제철에 나는 푸성귀며 생선을 아는 만큼 골라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다행히 아내는 도시 출신이라 어느 철에 어떤 채소나 과일이 나는 지, 생선이나 해초, 조개 같은 걸 잘 몰랐다. 하여 내가 한마디 할 때마다 귀챦기도 하였으련만 ‘건전한 의견 개진’이라고 잘 들어주어 15년 지난 지금은 별로 음식상에는 입 댈 일이 많지 않다. 원칙이 정해졌으니 말이다. 시장을 한바퀴 돌아보고 가장 싼 푸성귀나 생선을 사면 거의 틀림이 없다. 반드시 제 철 음식은 쌀 때 먹어두자는 것이다. 이제는 재현에 그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음식에 도전까지 하는 단계니 그간의 노력이 고맙고 가상하기도 하다. 醫食同原이고 身土心不二이다. 藥을 念頭에 두어 만든다고 하여 양념이란 말을 쓰니 말이다. 향신장, 향신즙... 들어나 봤나?
이런 나의 까다로운 성격이 비단 음식뿐이라면 집안의 일이니 별로 소문 날 일은 없으련만... 매사에 그냥 넘어 가기가 영 마음에 안 차는 경우가 많다. 몇 년 전, 그러니까 어찌 어찌하여 아내와 내가 같은 날 석, 박사 학위를 받게 되었다. 사실 가정을 꾸리고 나서 집들이나 애들 돌 외에는 손님 치를 일이 거의 없다. 내 성격에 그런 집들이나 생일 같은 건 번거롭게 챙기는 편이 아니어서 양가 부모님과 친지 분을 모실 기회가 거의 없었다. 하여 축하 해 주십사고 한 달 전부터 안내장을 보내고 하여 당일 양가 50명 정도가 졸업을 축하하러 오셨다. 토요일 오후라 늦게 오시는 분은 집으로 안내를 드리고 학위 수여식 후 점심은 허심청 송동월이란 한식집으로 모시게 되었다. 물론 예약대로 정시에 50명이 자리를 하고 앉았다. 토요일 오후라 바쁘기도 했겠지만 종업원의 안내 태도에서부터 음식 나오는 것까지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어 노인네들과 손님들조차도 불편해 하시니 초대한 우리의 처지가 딱하게 되었다. 큰소리로 항의하면 어르신들이 더 놀라실 것 같아 벙어리 냉가슴 앓듯 점심을 마쳤다. 가만있을 내가 아니지 않는가. 다음날 당장 ‘허심청 총지배인 귀하’로 시작되는 항의글을 보냈다. 우리네 서민들은 오히려 친절에 익숙ㅎ지 않아 불편하지만 않으면 그러려니 한다. 도데체 식당 종업원들은 뭘 해 자기가 먹고사는 지 본분을 잊은 듯 하다. 특별한 대접을 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정당하게 돈 내고 사 먹는 음식인 만큼 기본적인 친절은 당연한 것 아닌가? 대강 이런 내용의 컴플레인을 담고서.... 며칠 후 답신이 왔다. 자신이 동래관광호텔과 허심청의 총지배인이라며 정중한 사과와 함께 종업원들이 부산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의식의 서비스에 대한 전환이 어렵노라고... 또한 대개의 손님들이 바로 그 자리에서 큰소리 치며 욕설부터 하는 통에 잘못한 종업원일지라도 반감부터 먼저 사는 경우가 허다한데 글을 보내 주셔서 종업원들의 교육에도 도움이 되어 고맙노라며 언제라도 다시 한 번 이용하시면서 개선된 서비스를 확인할 수 있게 호텔과 허심청 내 어느 업장에서도 사용 가능한 쿠폰을 한 장 보내왔다. 정말이지 난 쿠폰을 원한 게 아니라 누구라도 또다시 나같은 불친절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전부였다. 3달이나 지난 후 축하할 일이 있어 가족끼리 그 쿠폰을 쓰기로 하고 내 이름으로 하면 별난 손님 떳다고 종업원들이 긴장할까봐 아내가 내당이라는 한식당에 예약을 했다. 도착하여 아내 이름을 대니 아무 곳이나 편한 곳에 앉으시라 하여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렸다. 혹시나 공짜 쿠폰 손님은 달리 대하는 게 관행인지라 미리 쿠폰을 보여 주었다. 이내 내당 지배인이란 사람이 달려오더니 내실에 자리가 마련되어 있노라며 자리를 옮겨 준다. 이미 꽃장식과 생케익이 준비되어 있었고 정갈한 음식에 더없이 정성스런 서비스가 이어졌다. 한참 식사 중에 누군가 노크를 하더니... 아! 이런 사람이 서비스직 총대장(?)이구나 하고 감탄 할만큼 깔끔한 총지배인이 인사차 왔다. 기념으로 샴페인을 부어 주고는 재삼 고맙다는 찬사에 우리는 할 말을 잊었다. 그날 내당의 그들은 생케익을 세 번이나 다시 바꾸었다는 후문도 들었고....그가 바로 동래관광호텔 총지배인 김상철님이다. (1994. 2. 졸업에 맞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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