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뽑은 좋은 글 한 편
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스님도 마을 사람도 인기척이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히 젖고 있다. 무량수전, 안양문, 조사당 응향각들이 마치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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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찍이서 바라봐도 가까이서 쓰다듬어봐도 무량수전은 의젓하고도 너그러운 자태이며 근시안적인 신경질이나 거드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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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수전 앞 안양문에 올라앉아 먼 산을 바라 보면 산 뒤에 또 산, 그 뒤에 또 산마루, 눈길이 닿는 데까지 그림보다 더 곱게 겹쳐진 능선들이 모두 이 무량수전을 향해 마련된 듯싶어 진다.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최순우-
하나 더....
-古寺 1- 조지훈
木魚 두드리다 졸음에 겨워
고오운 상좌아이도 잠이 들었다.
부처님은 말이 없이 웃으시는데
西域 萬里길
눈부신 노을 아래 모란이 진다.
또 한 편 더...
초여름, 깊은 산속이리라. 단청이 낡은 암자가 한 채. 하늘에는 솜 구름이 떠 있다. 들리는 것은 오직 물 소리. 느린 목탁 소리가 문득 멈추어 알고 보니 볼이 빨간 상좌 아이가 잠이 든 것이다. 부처님도 잠이 든 상좌 아이가 귀여워 빙긋이 웃고, 어느새 서산에 뉘엿뉘엿 해가 지고 서쪽 하늘이 눈부신 노을로 뒤덮인다. 노승이 신발 끄는 마당에 모란이 뚝뚝 떨어지고... -신경림- 시인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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