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스테이 후기(2002. 4/18-4/23)
대저 홈스테이 후기란 글은 언제 어디 누구 집에 머물렀더니 어떻더라는 식으로 게스트의 입장에서 호스트의 주변과 자신의 느낌을 적는 것이 상례이다. 나는 게스트가 아니라 호스트의 입장에서 몇 가지를 쓰고자 한다. “이상한 나라 일본”이라는 소 제목으로.
시작은 이러했다. 우리 네 식구는 금년 2월말 호주 켄버라의 제임스 톰슨네의 초대로 8박 9일간 홈스테이를 게스트로 한 적이 있다. 물론 1년여 전에 여행차 우리니라를 방문한 톰슨씨와 잠시 인사를 나누었고 이후 몇 번 메일을 주고 받는 정도였으나 국제홈스테이사이트에서 톰슨네를 보고서야 용기를 내어 호주행을 결심했던 것이다. 이후 게스트로서의 내 신상이 인터넷사이트에 올랐을 테고... 4월초 느닷없이 내 메일박스에 일본 요코하마에 사는 니헤이야스꼬(仁平寧子, 46세)라는 여자가 2-3일 홈스테이가 가능하겠냐고 물어 왔다. 대개의 가정사가 아내의 몫이어서 의견을 물으니 일본어 연습도 할 겸 그러자고 하여 가능하다고 회신을 보냈다.
우리는 당연히 부부가 오리라고 예상하였으나 이외로 혼자 온다는 것이다. 아연긴장! 일본 중년여자들은 그룹으로 여행을 많이 하지만 자신은 한국 음식을 찾아 경주, 부산을 보고 싶단다. 부부가 서울엔 두 번 왔던 적이 있다며 영어로 자신의 의사 표시 정도가 가능한 아주 호기심이 많은 전형적인 일본 주부라고 소개한다.
나는 당일은 학교 수업이 있어 아내를 공항으로 보냈다. 아내 사무실에선 남편이 일본 여자를 초대했는데 속 좋게도 마중까지 나가냐며 놀라워했다고들 말이 많았나 보다. 어때? 생각 나름이지. 그러니 저들은 평생 남의 집에 한 번 못 가보는 것 아닌가. 정말 서로 모르니 아내는 "YASUKO NIHEI"를, 그 여자는 KIM IL-RAN"을 적은 종이를 들고 게이트에서 만났다나. 다행히 아내가 일본어로 의사소통이 되어 집으로 데려왔다.
당초 계획은 우리 집서 3일 경주 여관에서 2일을 머물 계획이었다는데 일본의 료칸쯤으로 여기는 것 같아 그냥 방만 벽을 맞대고 있는 우리나라 여관보다 집이 더 편할 거라며 여관은 추천하고 싶지 않다니 반기듯 5일을 머물러도 되냐고 되묻는다. 경비도 아낄겸 홈스테이하는 의미도 찾을겸 허락을 하였다. 내심 다음 우리가 동경이나 요코하마에 가면 잠자리 걱정은 안하겠다고 생각했으나 웬걸 야스꼬는 정색을 하며 안내는 할 수 있지만 잠을 자기는 힘들다고 딱 잡아 거절이다. 남편은 45세로 요코하마 교육청 공무원을 20년 넘게 하고 있는 데 방 2간짜리 작은 아파트엔 두 사람 외에 더 누울 공간이 없을 정도로 좁단다. 그나마 아이가 없어 얼마나 다행이냐는 식이다.
이건 분명히 충격이다. 20년 알뜰히 직장 생활을 했는데도 방 한 간 여유가 없다니... 더구나 자녀도 없이... 시내에서 멀리 나가 집을 좀 더 큰 곳으로 옮길까도 생각해 보았다는 데 왕복 교통비가 너무 비싸 그것도 엄두도 못 내고 항상 일이 늦게 끝나 하는 수 없이 월 110만원이나 임대료를 내고 요코하마에 13평짜리 아파트에 칩거하고 있다나. 정말 잘사는 나라 일본 맞나? 아무리 국민들이 숨만 쉬고 산다고 하지만... 글쎄, 얼마나 저축을 많이 하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전형적인 일본식 결혼식과 장례식에 참석할 기회가 있어 일본인의 생활 문화를 경험한 바 있다. 평생을 이리도 작게 먹고, 못 입고, 안 쓰고 모아 결혼식과 장례식에 모은 돈을 다 쏟아 붓는 것 같았다. 미친 짓이다. 대개의 젊은 남자들은 혼자 산다.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아내를 부양하고 자녀를 양육할 여유가 없나보다. 자기네도 왜 일본을 부자 나라라 하는지 모르겠단다.
친구인 북해도대학 공대 학장으로 있는 사카아교수도 전에는 한번도 집에 오라는 말이 없더니 올핸 어쩐 일인지 초청 강연겸 집으로 초대를 하겠단다. 알고 보니 집에서 다니던 두 아들이 외지 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방 하나 여유가 생겼단다. 그러고 보니 내가 방 5개짜리 아파트로 이사 한다 했을 때 ‘한국의 교수는 어찌 그리 부자냐’하던 생각이 새삼 새롭다. 일본 그 이상한 나라. 내가 덧붙혔다. 한국은 정부는 가난해도 국민은 부자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더 살기 좋다고. 우리는 미국, 일본, 유럽도 부럽지 않다고...
다음날 일찍 경주로 향했다. 경주 1일 시티 투어가 있어 태워 보내고 우리는 보문호 주변 조깅을 했다 약 9키로. 50분에 주파가 되었다. 콩 요리집이 있어 모처럼 값싸게 점심을 배불리 먹었다. 다음은 17키로 덕동호 주변이다. 음식은 언제나 불만이지만 경주엔 양호한 온천이 있어 참 좋다.
재미있는 나라, 한국. 한 순간도 심심할 새가 없다.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사고대로 살아가는... 길거리 풍경은 너무도 다양하다. 도로가엔 무단 주차에 보행 질서가 없어 차건 사람이건 먼저 가면 임자고...이런 모습들은 범생이 나라 일본 여자의 눈에는 너무 신기해 보이나 보다. 기절초풍 일보 직전이다. 내가 변명삼아 말했다. ‘한국에서는 국민 누구나가 다 주인이다. 내가 가고 싶으면 가고, 너도 가고 싶으면 갈 수 있다’. "If you want, you go. I want, I will" 남을 위하지 않는다기보다는 나의 의사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액티브하고 개성적이며 부대끼며 살아있는 모습 그 자체다. 내가 기쁘다면 남이 조금 불편한 것 같아도 하고 싶다. 또한 남이 즐겁다면 내가 조금의 불편은 기꺼이 참아준다. 일본은 어떤가? 남에게는 절대로 불편을 끼치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좋더라도 남이 불편해 하면 아니해야 한다. 일요일 12시에 동시에 하는 우리나라의 ‘전국노래자랑’과 일본 위성 방송의 그것을 비교해 보라. 송해가 나와 한 두 마디 하다보면 그냥 무대 위고 객석이고 관계없이 일어나 춤추고 손짓하고 야유하고 난리 부르스 난장판이다. 그러나 BS1 에 나오는 일본판은 노래하는 사람도 얼마나 얌전한지. 어린이 ‘누가누가 잘하나’ 예행 연습같다. 관객은 차렸 자세로 손뼉치는 연습만 하고 있다. 그렇다고 듣기 좋은 노래만 할 수야 있나? 우리는 ‘땡’하면 더 신나하는 민족 아닌가? 내가 신나면 그게 더 좋은 거다. 지금은 내가 주인공이니 말이다.
일전에 우리 집에 머물었던 사코다, 고토미 부부가 제일 의아해했던 것은 등산객이 새벽에 동산 위에 올라 ‘야호~’하는 것이었다. 그 바람에 새벽잠을 깼다나.(우리 아파트 뒤편은 동래읍성터로 북장대가 있는 야산이다) 일본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나? 새벽잠을 자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된다면서... 어떠냐? 내가 기뻐 소리 한 번 내질렀기로서니. 다음날 또 다른 사람이 산에 올라 야호~한들 내가 ‘저런 패 죽일 놈’이라 하기야 하겠는가? 그럼 누구도 고함 한 번 못 지르고 일생을 산단 말인가? 정부는 모든 국민이 야호~ 소리 못 지르게 성대 수술이라도 해 주어야 한단 말씀이십니껴?(개그 콘서트 박성호 톤으로)
참 이상한 일본인! 그렇다. 일본은 역사상 한번도 민중혁명이라는 게 없는 나라다. 적과의 싸움도 대장이 앞서 나가 나는 어느 집안 몇 대손 누구누구인데...로 소개로 시작되어 둘이 결판이 안 나면 기껏해야 사무라이까지 싸워 결판을 낸다. 아래 백성들이야 ‘아무나 이겨라’ 싸움 구경하다 이기는 편에 머리만 조아리면 끝인 것이다. 그러면 생명은 보장되는 것이다. 지조고 의리고 뭐고 백성은 벌레만도 아닌 것이다.
이후 시키는 대로 우동 만들라면 평생, 아니 대대손손 그것만 하면 그만인 것이다. 아직도 몇 백년 전통 운운하지만 우리와는 생존 의미 자체가 틀리는 것이다. 성주 가족만 틀어박혀 살만한 일본의 폐쇄적인 성을 보라. 적어도 우리나라의 성은 건물이 아니라 작은 사회가 성벽으로 둘러 싸여져 있다. 성주 이하 모든 백성이 같이 먹고 자고 싸우고...끝내 패배하면 모두 장렬히 죽음을 맞는다. 행주 치마로 돌을 나르고, 뜨거운 물로 싸운 진주성엔 성주고 백성이고 모두가 다 주인이었던 것이다. 우리 민초 만세다. 그래서 우리 대한민국이 최고다. 대한국민 천세, 만만세다. 수퍼울트라켑숑왕쨩이다.
나는 야스꼬가 여자여서 그래도 집안일이며 요리할 때 조금은 도와주리라 기대했다. 물론 아내가 ‘May I help you?’ 했을 떄 ‘Sure, please do this for me’였다면 달라졌을런지는 모르나 ‘괜챦아요’ 정도로 사양했나 보다. 그 후론 일체 무릎 딱 끓고 밥상 앞에 앉아 미동도 않는다. 내가 식탁 준비를 하여도 꿈쩍도 않는다. 저, 저 범생이 일본 여자! 그야말로 시키는대로 하는 데 이미 젖어있다. 조금도 스스로 찾아서 해야겠다는 태도는 없다. 밥은 낭창 낭창 조금도 바쁠 이유가 없다. 나는 아침 5분이 아까워 우유에 밥을 말아 마시듯 먹는데도 일본 여자는 밥알을 하나, 둘 세고 있다. 그리고 기꺼이 빈 그릇을 나르거나 도울 수도 있고 또 내가 필요하면 ‘물 좀 주세요’ 할 수도 있지 않은 가? 물은 줄때까지 기다리고 혹 잊으면 안 마시고 그냥 잔다. 물 한 잔으로 남을 괴롭하기 싫어서 일게다. 내가 좀 싫어도 상대방이 크게 좋다면 할 수도 있고 또한 조금 귀챦은 일일 것 같아도 내가 꼭 필요하면 요구할 수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글쎄... 전 국민이 로보트 아니면 전부 오타쿠다.
잘사는 나라 백성의 옷차림새를 보라. 나는 결코 화려하고 사치스런 우리나라 여자들의 치장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 그리고 과감한 형태의 옷 등은 너무 개성적이라 우려할 만큼 좋아 보인다. 거의 칙칙한 갈색, 회색 계통으로 빨갛고 노란색의 의상의 너무 튀어 왕따당할까봐 시도를 못한다나? 우린 어떤가? 내가 좋으면 하는 거다. 형태도 색상도 다양하기 그지없다. 여유가 안 되는지 머리 패션도 거의 단발이다. 일본에서는 퍼머는 엄두도 못낸단다. 화장끼 없는 맨 얼굴에... 우리나라 여자들은 참 예쁘다. 얼굴이 화판이다. 얼마나 색색깔로 장식을 잘 하는 지... 검은 눈썹에 푸른 마스카라에 보랏빛 속눈화장에 발그레한 볼터치에 입술은 정말 내 맘이다. 눈동자를 장식하지 못해 탈이지만...일본 여자들은 하나같이 눈, 코, 입 등이 제대로 제 위치에 있는 것 같지 않을 때가 자주 있다. 글쎄...
그 여자로선 우리 집을 선택한 건 행운이라 생각한다. 내가 워낙 음식에 대해 까다로와 음식기행은 안내에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전에 많은 공부를 하였던지 각종 김치, 전, 지짐, 찌게, 비빔밥, 잡채, 만두, 삼계탕 등을 먹어 보겠노라고 알려 와서 체류 중 가능하면 먹일 생각이었다. 집에서 먹는 음식만으로도 대표적인 우리나라 음식의 대부분을 맛 볼 수 있었을테고... 원조 냉면집에선 정말 맛있다며 자신들이 서울에서 먹었을 때는 학생들도 많았는 데 맛이 별로 없었다고 했다. 그럼 그렇지. 어디 학교 골목길 양만 많고 맛은 그저 그런 학생 상대 싸구려 식당에 들렀었나 보다. 동래파전은 정말 책에서만 보았다며 반긴다. 삼계탕은 국물에 대추씨까지 알뜰히 발라 먹는다. 정말 제목을 ‘맛 기행’으로 했더라면 이 선에서 그칠게 아닌데 싶다. 다음 부군이랑 같이 오면 한국음식의 진수를 보여주겠노라고 헛 약속(?)도 해 본다.
나는 4번의 일본 방문으로 그런대로 일본다운 음식은 거의 먹어 보았으니 할 말은 있다. 화과자, 우메(매실)빵에 하카다 라멩, 나가사키 챰뽕에, 쿠마모토의 말고기 육회에다 일본 회석요리 카이세끼, 다자이후에서 먹은 두부 일품 요리와 유바 회에 미야자키의 명물 고등어, 정어리 사시미며 오오사카의 다코야끼, 요코하마의 정통 수사에서 만든 스시까지 먹는 즐거운 이야기야 끝이 없지. 세계 4대 진미라는 복사시미(후구)와 아구간 요리도 뺄 수 없고 다음엔 혹카이도 왕게와 북해정의 카께소바, 오키나와의 돼지고기 요리다. 기다려라. 먹는 재미가 어디냐. 염소 거시기도 생으로 최고의 보양식으로 먹는다니 우리 못지않는 몬도가네식도 있단다. 인류가 먹어야 할 10대 음식...거창하지 않다 겨우 시금치, 토마토, 불루베리, 브로콜리, 견과류, 연어, 마늘, 귀리, 레드와인, 녹차가 전부다. 이런 이야기로 밤 늦은 줄 모른다.
5박 6일의 한국 홈스테이에 만족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성심껏 하였으니 이후 느낌은 그 여자 몫이리라. 복천박물관에선 일본어 안내인이 있어 개인 가이드로 해 주는 우리나라, 좋은나라!(왜냐면 당일 손님이 우리밖에 없었으니까) 그래서 일본은 없다?
홈스테이 호스트의 입장에서 쓰다/ 2002.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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